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1622-1673)의 희극 " The Doctor in spite of himself" (번역하면,"자기가 의사이면서" 정도가 되겠다) 중에는 '즈가나렐' 이라는 무면허 돌팔이 의사가 등장한다.
그는 초등학교 중퇴의 학력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임기응변식 화술과 말도 안되는 라틴어를 우물우물 하면서 실어증 환자에게 포도주 적신 빵을 처방하는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촌민들을 치료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엉터리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신기하게(?) 효험을 보아 그는 날로 유명해진다.
그의 진료실에 가면 천장에 가격표가 붙어있다. 예를 들어, 두통에는 계란이 한 줄, 설사에는 닭이 한마리 등등이 되겠다. 그래서 환자가 진찰대에 누우면, 일목 요연한 '가격표'를 보게되고, 자기의 부담을 가늠할 수 있게된다. 왜 몰리에르가 의사에게 ' 떫은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극 중 무면허 돌팔이를 등장시켜 작가는 도망갈 길을 만들어 놓고, 진짜 의사들을 통렬히 꼬집고 있다.
세상 어느 의사 사무실에 가도, 가격표가 벽에 붙어 있는 곳은 없다.
아마 몰리에르가 의사를 만났을 때, 자기 나름 대로의 계산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내는 바람에 낭패한 경험이 있어 이 극을 통하여 실컷 화풀이를 하지않았나 짐작된다.
미국에서는 보험회사가 청구받아 지불하므로 청구 , 지불이 환자에게 말썽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보험이 없는 경우, 환자분들은 처음에 상당히 긴장하게된다. 이는 변호사나 다른 전문인의 의견을 구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의사 진료비를 정하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문제가 간단하여 구하는 의견이 한 마디로 충분할 경우 일지라도 , 사안의 중대성과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면 당연히 청구액은 많아질 것이며, 복잡한 문제를 만나 장시간의 심사숙고와 여러 참고 문헌이나 많은 다른 의견들을 참조해야 할 때는 당연히 청구액은 높아 질것이다.
또 간단히 대답할 수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 그 것이 아무나 알 수 없는 특수한 분야의 문제라면 또한 비싸 질것이다.
그리고 지출이 많은 사무실을 유지한다거나, 과실 보험료가 비싸다거나, 약속하기 힘든 바쁜 의사라면 이들 또한 비싼 청구서의 요인이 될 수있다.
그런데 의사의 진료비는 환자와 의사 두 사람만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한것이어서 원칙적으로 중간에 누가 간섭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진료비가 그 지역의 사정, 의사의 형편, 환자의 처지등 모든것을 감안한 합리적인 액수이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동의하는 바이다.
또한, 암만 청구액이 적더라도 환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면 낼 수 있는 만큼만 내고 받는것이 순리일 것이며, 또 간단한 문제일지라도 환자분이 더 사례하기를 원 한다면, 그만큼 더 지불하는것도 자연스럽다.
왕왕 청구액에 대하여 불평과 시비가 생기는 것을 보고 듣는다.
물론 앞의 극중 얘기 처럼 의사 사무실 천장에 '진료 가격표'를 붙인다면 어느만큼 해결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환자의 경우, 의학적으로 똑 같은 경우는 하나도 없으며 사람마다 개인 사정도 모두 다른데에 일률적으로 정 할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자존' 과 '명예'가 있다.
결론지어, 진료비, 즉 , 전문인의 청구서는 환자와 의사 두 사람이 서로의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해결 해야한다는 막연한 얘기 밖에 할 수 없겠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
Tuesday, March 8, 2011
Monday, March 7, 2011
'전람회의 그림'(pictures of exhibition)에 생각 해보는 단상
먼젓번 주말, C 선생의 서양화 전시회에 다녀 오다가, 내친김에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1839-1881)의 '전람회의 그림' 악보를 다시 읽기로 했다.
그런데 예상대로 첫 대목 부터 막힌다. promenade는 맨 처음 전주곡이며, 다음 10곡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간주곡들과 주제가 같다. 무소르그스키의 대변인 격인 친구 블라디미르 소스토브에 의하면 이것은 입장하여 걸어들어가는 대목이다.
상식적으로 걷는다면, 이는 4/4나 2/4 일 것이다. 그런데 첫 소절은 5/4 , 다음소절은 6/4이다.
그럼 11박자인가? 그리고 이 엇 박자 주제는 이 후에도 계속 나온다.
첫 소절 다이나믹은 강한 Forte다. 아울러 빠르게(allegro), 약간 끌면서(poco sostenuto) 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똑 바로 걷지 못하는 사람이, 쿵쿵 다리에 힘을 주어, 끌면서 걷는다? 그렇다면, 술 취한 사람인가?
그리고 보니, 무소르그스키가 나이 13세, 러시아 근위병 사관학교에 입교 했을 때 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사가들은 기록하고있다. 그는 드물게 ,어릴적 부터 피아노를 치기는 했지만 , 직업군인 출신의 작곡가요 ,피아니스트다.
이 '전람회 그림'을 작곡하게된 사연이 있다.
그의 친구 화가 빅토르 하트만이 39세로 1873년 세상을 떠난다. 1년 후, 센트 페테스부르그의 화랑에서 유작 그림 400여 점을 가지고 유작전이 열린다. 그중 11점의 그림의 인상을 피아노 곡으로 옮겨 놓은 것이 이 '전람회의 그림'이다.
그런데 악보 원고가 어떤 부분은 연결이 안될 만큼 건너뛰고, 오식이 많아. 후일 림스키 콜사코프가 다시 편집한것이 오늘날 쓰이는 그 피아노 악보다.
오케스트라 편곡 악보는 무려 50여 종이 나와있다. 그러나 그중 모리스 라벨의 편곡 악보가 가장 널리, 보편적으로 쓰인다.
얘기가 잠간 옆으로 흘렀지만, 그가 심한 알콜 중독이었음을 감안하면 이 악보 부분은 이해가 된다.
다시 '전람회의 그림'으로 돌아가자.
첫 곡 gnomus는 우화 속에 나오는 '난쟁이'다. 둘째곡은 '이태리의 옛 성', 셋째 곡은 ' 빠리의 튜이률리 궁', 넷째 곡 ' 폴란드의 소 ' 인데 오늘날 그 그림들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각각 모두 특징있는 음악으로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다섯째 곡 '닭들의 춤'에서는 종종거리고 뛰어다니는 모습들을 , 여섯째 곡 '부자와 가난한 두 유태인'은 대위법 적으로 코드진행은 같으나 , 전혀 다른 두 개의 멜로디가 하나는 저음 현으로, 다른 하나는 높은 핏치의 목관으로 대비를 이루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일곱번째 곡 , '프랑스의 시장 풍경'에서는 현으로 표현되는 ' 수다떠는 아줌마'가 일품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말 하는 톤'은 상당히 부드럽다. 이는 통상의 기대를 벗어난다.
여덟번째 곡 ,'카타콤'은 ,아시다시피, 기독교인의 지하 땅굴 묘지다. 컴컴하고 음산한 곳을 등불을 앞세워 헤메는 모습이다. 으시시 하다.
아홉번째 곡, 헛간에 서있는 러시안 풍의 시계인데 , 음악에서는 거기에다가 날아다니는 ' 마법의 비행'이 더해진다. 첫곡 gnomus의 확대판 처럼 '기괴한' 느낌이다. 중간 느려지는 부분(andante)의 16분음표 3연음부 트레몰로(진동)는 피아니스트가 고생하는 대목이라는 중평이다.
마지막 곡, 익숙한 '키예브의 대문'이다. 키예브는 우크라이나의 중심 도시다. 여기에다 러시아 황제가 전설의 영웅 '보가틸(Bogatyl)'을 기념하는 큰 문을 세우려고 , 디자인을 공모했었는데, 화가 하트만이 응모해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 였는지 모르나, 이 그림대로의 문은 세워지지 않았다. 전 뉴욕 필의 지휘자 추빈 메타가 키예브에 가 보고, "쪼그만 문에 실망했다"고 얘기한 것을 보면 하트만의 그림 같은 '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무소르그스키의 '문'은 듣는 사람이 얼어 붙을만큼 대단히 웅장하다.
호랑이는 가죽을, 예술가는 작품을 남김으로 후세에 알려진다.
'전람회의 그림'을 듣고 , 그 예술성과 천재성에 감동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이 있는한, 무소르그스키는 어디서나 외롭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MAR.7. 2011.
그런데 예상대로 첫 대목 부터 막힌다. promenade는 맨 처음 전주곡이며, 다음 10곡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간주곡들과 주제가 같다. 무소르그스키의 대변인 격인 친구 블라디미르 소스토브에 의하면 이것은 입장하여 걸어들어가는 대목이다.
상식적으로 걷는다면, 이는 4/4나 2/4 일 것이다. 그런데 첫 소절은 5/4 , 다음소절은 6/4이다.
그럼 11박자인가? 그리고 이 엇 박자 주제는 이 후에도 계속 나온다.
첫 소절 다이나믹은 강한 Forte다. 아울러 빠르게(allegro), 약간 끌면서(poco sostenuto) 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똑 바로 걷지 못하는 사람이, 쿵쿵 다리에 힘을 주어, 끌면서 걷는다? 그렇다면, 술 취한 사람인가?
그리고 보니, 무소르그스키가 나이 13세, 러시아 근위병 사관학교에 입교 했을 때 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사가들은 기록하고있다. 그는 드물게 ,어릴적 부터 피아노를 치기는 했지만 , 직업군인 출신의 작곡가요 ,피아니스트다.
이 '전람회 그림'을 작곡하게된 사연이 있다.
그의 친구 화가 빅토르 하트만이 39세로 1873년 세상을 떠난다. 1년 후, 센트 페테스부르그의 화랑에서 유작 그림 400여 점을 가지고 유작전이 열린다. 그중 11점의 그림의 인상을 피아노 곡으로 옮겨 놓은 것이 이 '전람회의 그림'이다.
그런데 악보 원고가 어떤 부분은 연결이 안될 만큼 건너뛰고, 오식이 많아. 후일 림스키 콜사코프가 다시 편집한것이 오늘날 쓰이는 그 피아노 악보다.
오케스트라 편곡 악보는 무려 50여 종이 나와있다. 그러나 그중 모리스 라벨의 편곡 악보가 가장 널리, 보편적으로 쓰인다.
얘기가 잠간 옆으로 흘렀지만, 그가 심한 알콜 중독이었음을 감안하면 이 악보 부분은 이해가 된다.
다시 '전람회의 그림'으로 돌아가자.
첫 곡 gnomus는 우화 속에 나오는 '난쟁이'다. 둘째곡은 '이태리의 옛 성', 셋째 곡은 ' 빠리의 튜이률리 궁', 넷째 곡 ' 폴란드의 소 ' 인데 오늘날 그 그림들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각각 모두 특징있는 음악으로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다섯째 곡 '닭들의 춤'에서는 종종거리고 뛰어다니는 모습들을 , 여섯째 곡 '부자와 가난한 두 유태인'은 대위법 적으로 코드진행은 같으나 , 전혀 다른 두 개의 멜로디가 하나는 저음 현으로, 다른 하나는 높은 핏치의 목관으로 대비를 이루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일곱번째 곡 , '프랑스의 시장 풍경'에서는 현으로 표현되는 ' 수다떠는 아줌마'가 일품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말 하는 톤'은 상당히 부드럽다. 이는 통상의 기대를 벗어난다.
여덟번째 곡 ,'카타콤'은 ,아시다시피, 기독교인의 지하 땅굴 묘지다. 컴컴하고 음산한 곳을 등불을 앞세워 헤메는 모습이다. 으시시 하다.
아홉번째 곡, 헛간에 서있는 러시안 풍의 시계인데 , 음악에서는 거기에다가 날아다니는 ' 마법의 비행'이 더해진다. 첫곡 gnomus의 확대판 처럼 '기괴한' 느낌이다. 중간 느려지는 부분(andante)의 16분음표 3연음부 트레몰로(진동)는 피아니스트가 고생하는 대목이라는 중평이다.
마지막 곡, 익숙한 '키예브의 대문'이다. 키예브는 우크라이나의 중심 도시다. 여기에다 러시아 황제가 전설의 영웅 '보가틸(Bogatyl)'을 기념하는 큰 문을 세우려고 , 디자인을 공모했었는데, 화가 하트만이 응모해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 였는지 모르나, 이 그림대로의 문은 세워지지 않았다. 전 뉴욕 필의 지휘자 추빈 메타가 키예브에 가 보고, "쪼그만 문에 실망했다"고 얘기한 것을 보면 하트만의 그림 같은 '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무소르그스키의 '문'은 듣는 사람이 얼어 붙을만큼 대단히 웅장하다.
호랑이는 가죽을, 예술가는 작품을 남김으로 후세에 알려진다.
'전람회의 그림'을 듣고 , 그 예술성과 천재성에 감동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이 있는한, 무소르그스키는 어디서나 외롭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MAR.7. 2011.
Sunday, March 6, 2011
대접하기, 대접받기.
시집 살이를 세게한 며느리가 더 독한 시어머니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이 말이 어디 쓰이건 간에 별로 듣기 좋은 얘기는 결코 아니고, 또 '독하게' 되어서도 안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어릴 때 엄격하신 부모님께서 아이들이 돈을 가지면 '보초'(?)가 없다 하여 , 항상 무엇이 필요하면 여쭈어 '간접 구매'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물건 맘대로 '골라' 사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고 , 그 어린 마음에 나중에 내가 아버지가 되면 절대로 그런 식으로는 하지 않는다고 '맹세'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되고 나서는 아이들로 하여금 고르게 하고, 나는 돈을 냈다. 아이들이 더 큰 다음에는 돈을 줄 때 미리 쓸 곳을 묻던지 , 다음에 확인하는 방법을 쓴다. 별로 불평이 없는 것을 보니 그런대로 납득이 되는 방법인 것 같다.
대학시절 병동에 임상 실습을 나가서 대조적인 두 유형의 교수님을 뵙게 되었다.
외과의 K 교수님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수술하기 전 꼭 10여분 씩 혼자 기도하고 집도하는 분이셨다. 그런데 질색인 것은 환자분 앞에서 이것, 저것 물어 대답을 못하면 사정없이 망신을 주시는 것이었다. 다음에 그 환자분께 다시가서 묻거나 피를 뽑거나 할 때 , 이미 구겨진 체면은 회복할 길이 없어 대단히 서먹하고 어색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내과의 H 교수께서는 학생들에게도 환자 앞에서는 꼭 '선생'으로 호칭하는 분이셨다. 물론 우리끼리만 있을 때에는 반말도 하시고 홍군, 최군 하시다가도 환자 앞에 서면 꼭 '홍 선생', '최 선생', "이것은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이런 식이었다.
자연히 H 교수님의 회진에 따라 다니는 것은 신바람이 났고, 절로 열심히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병원장, 학장이 되셨을 때에도 학생을 존대하는 습관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떤 분은 사람 앞에서 이중적으로 대하는 분이 더 못마땅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옹졸하다고 하실지 모르겠으나 솔직히 얘기해서, K교수님이 퇴직 후 난처한 처지가 되었을 때는 도울 맘도 나지 않았으나, H교수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정말 마음 속으로 슬퍼하고 애석해 하며, 명복을 빌었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 와서 수련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회진 후 한참 당하고 의기 소침해 있을 때면 같은 레지덴트 C 선생이 와서 "다 알면 뭐 하러 레지덴트 하나요? 모르니까 하지. 기운 내쇼."하던 얘기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 수련의들을 데리고 회진을 하면 ,영어에는 반말이 없기도 하지만 , 되도록 정중히 대하고 , 물을 때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내 자신이 대답 까지 하는것을 철칙으로 삼고있다.
필자가 경험했던 좁은 범위의 얘기가 결국 확대해 보면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이 적용되는 일 일것이다.
어제의 어린이는 오늘의 어른이요, 어제의 학생은 오늘의 수련의, 내일의 전문의 , 동료 개업의가 됨을 항상 보고있다.
남을 끌어 내린다고 해서 내가 높아지는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입장에 서서 서로를 다른 한 인간으로 존중 할 때, 이 세상은 더 살 맛나는 곳이 될것 같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 " 에서 -
어릴 때 엄격하신 부모님께서 아이들이 돈을 가지면 '보초'(?)가 없다 하여 , 항상 무엇이 필요하면 여쭈어 '간접 구매'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물건 맘대로 '골라' 사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고 , 그 어린 마음에 나중에 내가 아버지가 되면 절대로 그런 식으로는 하지 않는다고 '맹세'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되고 나서는 아이들로 하여금 고르게 하고, 나는 돈을 냈다. 아이들이 더 큰 다음에는 돈을 줄 때 미리 쓸 곳을 묻던지 , 다음에 확인하는 방법을 쓴다. 별로 불평이 없는 것을 보니 그런대로 납득이 되는 방법인 것 같다.
대학시절 병동에 임상 실습을 나가서 대조적인 두 유형의 교수님을 뵙게 되었다.
외과의 K 교수님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수술하기 전 꼭 10여분 씩 혼자 기도하고 집도하는 분이셨다. 그런데 질색인 것은 환자분 앞에서 이것, 저것 물어 대답을 못하면 사정없이 망신을 주시는 것이었다. 다음에 그 환자분께 다시가서 묻거나 피를 뽑거나 할 때 , 이미 구겨진 체면은 회복할 길이 없어 대단히 서먹하고 어색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내과의 H 교수께서는 학생들에게도 환자 앞에서는 꼭 '선생'으로 호칭하는 분이셨다. 물론 우리끼리만 있을 때에는 반말도 하시고 홍군, 최군 하시다가도 환자 앞에 서면 꼭 '홍 선생', '최 선생', "이것은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이런 식이었다.
자연히 H 교수님의 회진에 따라 다니는 것은 신바람이 났고, 절로 열심히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병원장, 학장이 되셨을 때에도 학생을 존대하는 습관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떤 분은 사람 앞에서 이중적으로 대하는 분이 더 못마땅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옹졸하다고 하실지 모르겠으나 솔직히 얘기해서, K교수님이 퇴직 후 난처한 처지가 되었을 때는 도울 맘도 나지 않았으나, H교수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정말 마음 속으로 슬퍼하고 애석해 하며, 명복을 빌었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 와서 수련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회진 후 한참 당하고 의기 소침해 있을 때면 같은 레지덴트 C 선생이 와서 "다 알면 뭐 하러 레지덴트 하나요? 모르니까 하지. 기운 내쇼."하던 얘기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 수련의들을 데리고 회진을 하면 ,영어에는 반말이 없기도 하지만 , 되도록 정중히 대하고 , 물을 때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내 자신이 대답 까지 하는것을 철칙으로 삼고있다.
필자가 경험했던 좁은 범위의 얘기가 결국 확대해 보면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이 적용되는 일 일것이다.
어제의 어린이는 오늘의 어른이요, 어제의 학생은 오늘의 수련의, 내일의 전문의 , 동료 개업의가 됨을 항상 보고있다.
남을 끌어 내린다고 해서 내가 높아지는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입장에 서서 서로를 다른 한 인간으로 존중 할 때, 이 세상은 더 살 맛나는 곳이 될것 같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 " 에서 -
Saturday, March 5, 2011
마감하는 자세
20여년 전 일이다. 남미 모 나라에서 성직자 한 분이 소개되어 오셨다. 전립선 암 이라는 진단을 받으셨는데, 미국에서 다시 검사해 보시겠다 했다. 비뇨기과 의사분과 함께 검사를 시작해 보니, 암은 전립선 만이 아니고 거의 온 몸의 뼈에 전이가 되어 다음 단계의 치료가 시급한 지경이었다. 사실 대로 말씀드리니 이 분은 대단히 실망하고 노해서 그 때 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었다. " 왜 나같이 총실한 신의 종을?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사인 아웃'(의사의 권고에 반대하여 , 환자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퇴원하는것) 하셨고 , 그 와중에서 불신 (?)을 받은 필자도 좋은 기분이 아니어서 서로 서먹하게 헤어지고 말았다. 두 달 후 뉴욕의 한 병원에서 저 세상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소개했던 분으로 부터 들었다.
대학 선배 한 분이 계셨다. 직장암의 진단을 받고 , 더 알아보니 간, 위 까지 퍼져있었다. 이 분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열렬한 종교인이 되셨고, 석 달 후 결국 유명을 달리하셨다.
한 장로님 부인이 계셨다. 우연히 간 암이 장 까지 퍼져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자 이분은 모든 치료를 마다하고 '식이요법'과 '신앙'으로 고치겠다며 기도원에 들어 가셨다. 한 달 후 부음을 들었다.
필자는 직업상 많은 분 들의 인생 마감을 지켜보게 된다. 의학은 지난 10, 2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보여 엣날에 생각만 하던 장기 이식도 잘 하고, 항암제, 기타 약품과 기술의 발전으로 생명도 연장시키며 , 삶의 질도 훨씬 나아졌다. 그러나 위의 예들과 같이 아직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사방에 쌓여있다.
인생을 마감하는 자세는 각각 다른 얼굴을 가진 만큼이나 다양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 만약 내가 이런일을 당한다면 과연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를 종종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물론 당해봐야 알 일이니 , 다음은 단순히 지금 필자의 '희망사항' 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첫째, 밝혀진 사실은 의연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피할 수 없으면 당당히 맞서는 것이 순리일 것이며, 주위 사람들도 안도 할것이다.
둘째로, 그 때까지 내가 가졌던 생각이나 믿음을 바꾸지 않기 바란다. 필자는 영원한 내세가 있음을 믿는다. 그러할진데, 죽음을 맞는 순간은 어릴 때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 맞기를 기다리던 그 순간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믿고있다. 따라서 생각에 큰 변화가 있을 수 없으리라.
더불어 개인적 의견이지만 CPR (삼폐 소생술)은 사양하려고 한다.
세번째는, 침착하게 그동안 하던 일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 물론 신체 조건에 따라 , 일의 성격이나 양은 조절되어야 하겠지만 , 되도록 하던 일을 그대로 계속 했으면 한다.
넷째로, 벌여 놓은 일들은 교통 정리하여 단순화 시키고, 그일을 맡아 할 다음 사람들에게 혼동이 없도록 명확한 한계를 그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이 감성 보다 항상 앞서야 할텐데-,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다.
다섯째, 아는 사람들과 작별하는 절차는 끝까지 없는것이 좋겠다. 항상 끝울 의식하지 않고 어제의 연장인 오늘, 오늘의 연장인 내일을 살아야 할 테니까-.
그런데 예고없이 그 순간을 맞게 된다면?
하하-, 거기에 대해서는 천천히,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
대학 선배 한 분이 계셨다. 직장암의 진단을 받고 , 더 알아보니 간, 위 까지 퍼져있었다. 이 분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열렬한 종교인이 되셨고, 석 달 후 결국 유명을 달리하셨다.
한 장로님 부인이 계셨다. 우연히 간 암이 장 까지 퍼져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자 이분은 모든 치료를 마다하고 '식이요법'과 '신앙'으로 고치겠다며 기도원에 들어 가셨다. 한 달 후 부음을 들었다.
필자는 직업상 많은 분 들의 인생 마감을 지켜보게 된다. 의학은 지난 10, 2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보여 엣날에 생각만 하던 장기 이식도 잘 하고, 항암제, 기타 약품과 기술의 발전으로 생명도 연장시키며 , 삶의 질도 훨씬 나아졌다. 그러나 위의 예들과 같이 아직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사방에 쌓여있다.
인생을 마감하는 자세는 각각 다른 얼굴을 가진 만큼이나 다양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 만약 내가 이런일을 당한다면 과연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를 종종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물론 당해봐야 알 일이니 , 다음은 단순히 지금 필자의 '희망사항' 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첫째, 밝혀진 사실은 의연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피할 수 없으면 당당히 맞서는 것이 순리일 것이며, 주위 사람들도 안도 할것이다.
둘째로, 그 때까지 내가 가졌던 생각이나 믿음을 바꾸지 않기 바란다. 필자는 영원한 내세가 있음을 믿는다. 그러할진데, 죽음을 맞는 순간은 어릴 때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 맞기를 기다리던 그 순간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믿고있다. 따라서 생각에 큰 변화가 있을 수 없으리라.
더불어 개인적 의견이지만 CPR (삼폐 소생술)은 사양하려고 한다.
세번째는, 침착하게 그동안 하던 일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 물론 신체 조건에 따라 , 일의 성격이나 양은 조절되어야 하겠지만 , 되도록 하던 일을 그대로 계속 했으면 한다.
넷째로, 벌여 놓은 일들은 교통 정리하여 단순화 시키고, 그일을 맡아 할 다음 사람들에게 혼동이 없도록 명확한 한계를 그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이 감성 보다 항상 앞서야 할텐데-,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다.
다섯째, 아는 사람들과 작별하는 절차는 끝까지 없는것이 좋겠다. 항상 끝울 의식하지 않고 어제의 연장인 오늘, 오늘의 연장인 내일을 살아야 할 테니까-.
그런데 예고없이 그 순간을 맞게 된다면?
하하-, 거기에 대해서는 천천히,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
Friday, March 4, 2011
이길 수 있는 게임 - 식이요법
필자가 이곳, 미국에 와서 산 지 38년째가 된다. 바쁘게 지낸 탓도 있지만 , 누가 그동안 일상생활에 큰 불평없이 지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서슴치않고 "저녁밥 먹는 재미 때문" 이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여기 말씀드린 저녁밥은 당연히 집에서 먹는 한국 음식을 가르킨다. 정말 매일 저녁밥 먹는 '희망'이 없었다면 벌써 보따리를 싸고 한국에 몇 번 돌아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람에게 입맛대로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만일 어떤 이유로 타의에 의해 맘 대로 먹지 못 하도록 강요 당한다면 이처럼 견디기 힘든 일이 없을 줄 안다. 더구나 일생을 그렇게 지내야 한다면 , 체념에 그치지 않고 , 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것이 당연하다 할것이다.
한 예로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식이요법을 일생 계속해야 하는 고혈압, 당뇨를 가지신 분 들의 고통을 당해 보신 분들은 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되도록 빨리 옛 입맛을 포기하고, 새로운 음식에 익숙해 지는것이 건강에도 이롭고, 그만큼 고통에서 일찍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러하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고혈압, 일부 신장 질환, 진행된 간 질환의 경우, 저 소디움(저염) 식이요법을 하게된다.
이때는 고추 , 후추, 파프리카등의 향료나 마늘 , 설탕, 식초 등을 대신 첨가하기를 권한다.
하루 3 그램의 소디움으로 제한하는 경우, 약간의 짠 맛은 남아있으므로 , 많은 경우,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빠른 적응을 보인다. 그런데 , 3그램의 제한된 양은 음식 원료 자체에 함유된 소디움도 포함된 양이다. 다시 말해서, 소금을 그만큼 '더하라는 얘기가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얼큰한 김치, 깍두기 국물, 시원한 동치미, 짭짤한 어리굴 젓 ,얼음 띄운 냉면 육수 , 초 고추장 듬뿍 찍어 한 입에 집어넣는 광어 회, 싸아- 한 콜라 한 컵 등등은 혀 끝으로 가끔 '맛 보는' 정도에 그쳐야지 '들이키는 ' 정도가 되면 한편에서 약물의 부작용을 감수하며 애써 이루어놓은 성과가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당뇨병의 경우 그사람의 체중, 활동량에 따라서 필요한 칼로리의 양을 계산해 내게되며 , 이에따라 음식의 양이 정해진다. 대개, 총 칼로리의 반은 전분으로, 1/4은 지방으로, 나머지 1/4은 단백질로 취하게 된다. 당뇨 식의 칼로리 양은 약간의 개인차가 있으나, 하루 1,500 칼로리에서 2,000 칼로리가 대부분이다. 어림잡아 이것은 보통 사람이 먹는 양의 반 내지 2/3가량의 양이다. 따라서 모든것을 다른 사람의 반 만 먹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간단하고 쉽다. 즉, 밥 두 공기 먹던 것을 하나로, 국 한그릇은 반그릇 , 두점의 불고기는 한 점으로, 이런 식이 되겠다. 그리고, 고 칼로리인 튀긴 음식이나 삼겹살, 꼬리 곰탕 같은 동물성 고지방 식품 , 아이스크림, 꿀이나 떡 같은 고 농도 음식은 피하는데, 꼭 먹어야겠다면 맛 보는 정도에 그치고, 그 칼로리 양 만큼 다른 곳에서 제하고 적게 먹으면 된다.
그러니까 '절대로 안된다'는 특정한 음식은 없으며, 허용된 총 칼로리 안에서 비슷한 종류 음식 끼리 더하고 빼는 융통성을 가지면 된다. 항상 ' 계산이 습관화 ' 되어야한다.
'음식 소화 흡수 시간'이 영향을 줄 수도있다. 예를 들어, 설탕물은 소화 흡수 되는 시간이 빠르다. 따라서 혈당이 짧은 시간안에 갑자기 높아지는 영향을 받는다. 이 종류의 음식은 최소한만 섭취함이 혈당 조절을 쉽게한다.
예외적인 경우로 임신 , 소모성 질환, 말기의 간 질환 및 도저히 식이요법을 지키지 못할 이유가 있으면, 더 많이 먹게하고, 약물의 양을 늘려 투여하는 수도 있으나, 이들은 극히 제한된 경우로 전문의에게 맡겨야 할 일이다.
가끔 저염식과 저 칼로리 식을 같이 해야 할 분이 계시는데, 원리는 같다. 즉, 저염식을 적게 먹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주위 사람들의 협조다. 가끔 식탁에서 식이요법 중인 사람에게 "이번만!"하며 억지로 피해야 할 음식을 강권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는데, 도대체 그래서 바라는것이 무엇이며, 그 다음은 어쩌자고 이러는가? 과연 이사람들이 제 정신인가? 한심한 생각이 든다. 이 얼 빠진 사람들은 그 순간 자기가 형법상 '과실 치상'및 '2급 중범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칼럼집 " 벽을 향한 소리" 에서 -
사람에게 입맛대로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만일 어떤 이유로 타의에 의해 맘 대로 먹지 못 하도록 강요 당한다면 이처럼 견디기 힘든 일이 없을 줄 안다. 더구나 일생을 그렇게 지내야 한다면 , 체념에 그치지 않고 , 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것이 당연하다 할것이다.
한 예로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식이요법을 일생 계속해야 하는 고혈압, 당뇨를 가지신 분 들의 고통을 당해 보신 분들은 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되도록 빨리 옛 입맛을 포기하고, 새로운 음식에 익숙해 지는것이 건강에도 이롭고, 그만큼 고통에서 일찍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러하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고혈압, 일부 신장 질환, 진행된 간 질환의 경우, 저 소디움(저염) 식이요법을 하게된다.
이때는 고추 , 후추, 파프리카등의 향료나 마늘 , 설탕, 식초 등을 대신 첨가하기를 권한다.
하루 3 그램의 소디움으로 제한하는 경우, 약간의 짠 맛은 남아있으므로 , 많은 경우,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빠른 적응을 보인다. 그런데 , 3그램의 제한된 양은 음식 원료 자체에 함유된 소디움도 포함된 양이다. 다시 말해서, 소금을 그만큼 '더하라는 얘기가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얼큰한 김치, 깍두기 국물, 시원한 동치미, 짭짤한 어리굴 젓 ,얼음 띄운 냉면 육수 , 초 고추장 듬뿍 찍어 한 입에 집어넣는 광어 회, 싸아- 한 콜라 한 컵 등등은 혀 끝으로 가끔 '맛 보는' 정도에 그쳐야지 '들이키는 ' 정도가 되면 한편에서 약물의 부작용을 감수하며 애써 이루어놓은 성과가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당뇨병의 경우 그사람의 체중, 활동량에 따라서 필요한 칼로리의 양을 계산해 내게되며 , 이에따라 음식의 양이 정해진다. 대개, 총 칼로리의 반은 전분으로, 1/4은 지방으로, 나머지 1/4은 단백질로 취하게 된다. 당뇨 식의 칼로리 양은 약간의 개인차가 있으나, 하루 1,500 칼로리에서 2,000 칼로리가 대부분이다. 어림잡아 이것은 보통 사람이 먹는 양의 반 내지 2/3가량의 양이다. 따라서 모든것을 다른 사람의 반 만 먹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간단하고 쉽다. 즉, 밥 두 공기 먹던 것을 하나로, 국 한그릇은 반그릇 , 두점의 불고기는 한 점으로, 이런 식이 되겠다. 그리고, 고 칼로리인 튀긴 음식이나 삼겹살, 꼬리 곰탕 같은 동물성 고지방 식품 , 아이스크림, 꿀이나 떡 같은 고 농도 음식은 피하는데, 꼭 먹어야겠다면 맛 보는 정도에 그치고, 그 칼로리 양 만큼 다른 곳에서 제하고 적게 먹으면 된다.
그러니까 '절대로 안된다'는 특정한 음식은 없으며, 허용된 총 칼로리 안에서 비슷한 종류 음식 끼리 더하고 빼는 융통성을 가지면 된다. 항상 ' 계산이 습관화 ' 되어야한다.
'음식 소화 흡수 시간'이 영향을 줄 수도있다. 예를 들어, 설탕물은 소화 흡수 되는 시간이 빠르다. 따라서 혈당이 짧은 시간안에 갑자기 높아지는 영향을 받는다. 이 종류의 음식은 최소한만 섭취함이 혈당 조절을 쉽게한다.
예외적인 경우로 임신 , 소모성 질환, 말기의 간 질환 및 도저히 식이요법을 지키지 못할 이유가 있으면, 더 많이 먹게하고, 약물의 양을 늘려 투여하는 수도 있으나, 이들은 극히 제한된 경우로 전문의에게 맡겨야 할 일이다.
가끔 저염식과 저 칼로리 식을 같이 해야 할 분이 계시는데, 원리는 같다. 즉, 저염식을 적게 먹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주위 사람들의 협조다. 가끔 식탁에서 식이요법 중인 사람에게 "이번만!"하며 억지로 피해야 할 음식을 강권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는데, 도대체 그래서 바라는것이 무엇이며, 그 다음은 어쩌자고 이러는가? 과연 이사람들이 제 정신인가? 한심한 생각이 든다. 이 얼 빠진 사람들은 그 순간 자기가 형법상 '과실 치상'및 '2급 중범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칼럼집 " 벽을 향한 소리" 에서 -
Thursday, March 3, 2011
칸타타(cantata)와 오라토리오(oratorio)에 대한 이해
"교회에서 특별한 절기나 행사에 즈음하여 성가대가 언제나 '칸타타'를 준비한다고 말 합니다. ' 칸타타'는 보통 명사로 특별한 경우에 부르는 모든 노래를 총칭하는 말입니까, 아니면 잘 못 쓰이고 있는 겁니까? 잘 못 쓰인다면 바른 호칭은 무엇인가요?"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칸타타가 보통 명사임은 맞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총칭'하는 범위 넓은 단어는 아닙니다.
요즈음 부활절을 앞두고 교회 성가대 마다 특별 순서를 마련하고, 연습에 바쁩니다. 예를 들어 , 연습하는 곡 중에는 칸타타도 있고, 오라토리오도 있고, 미사곡도 있고 , 진혼곡도 있습니다. 이 들은 교회음악을 분류할 때 , 곡이 쓰인 목적과 형식에 따라 나뉜 교회음악의 종류들입니다. 칸타타는 보시는 바와 같이 그 종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형식과 목적이 눈에 띄게 다른 미사곡, 진혼곡, 영가 등과는 달리 , 칸타타와 오라토리오는 비슷한 점이 있어 혼동을 할 수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거기에 대해 잠간 설명하겠습니다.
칸타타와 오라토리오의 같은 점은, 우선, 둘 다 17세기 이태리에서 시작됩니다.
성서에 나오는 얘기를 주제로한 대본이 있고, 여기에 곡이 붙여졌다는 것, 거의 모두가 성악곡이며 , 교회당이나 연주회장에서 연기없이 연주만 된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다른점들은,
칸타타는 대본이 , 대개 하나 혹은 몇개의 장면에 국한됩니다. 따라서 공연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음악적으로 비교적 짧고 간단한 서창, 영창, 이중창이 주로 이며, 여기에 하나, 혹은 많아야 두,세 종류 악기의 반주를 받습니다.
덧붙일 형식상의 특징이라면, ' 다 카포 아리아'인데, 아시는 대로, 영창(aria)의 마지막 부분에서 맨 앞 으로 돌아와 (D.C.) , 중간에서 (fine) 끝나는 것입니다.
참고로, 칸타타의 어원은 cantore(노래하다)입니다.
오라토리오는 규모가 칸타타보다 커서, 대본은 대하소설 처럼 긴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연 시간도 훨씬 깁니다. 서창과 영창도 있지만 합창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여기에 상응하는 2관, 4관 편성 오케스트라의 반주를 받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바하의 '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헨델의 '메시아', '에스더', 하이든의 '천지창조', 멘델스존의 '엘리아', 베토벤의 '올리브 산의 예수' 들이 오라토리오에 속합니다.
옃 년 전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가 '리버풀'이라는 오라토리오를 작곡 해, 메스컴에서 떠든 적도 있습니다.
여담으로, 오라토리오의 어원은 그 곡들이 연주되던 ' 사각형 기도실'입니다.
드물지만 그런 희귀한 예도 있습니다.
간단히 결론지어, 칸타타보다 길고, 규모가 크고 , 보다 다양한것이 오라토리오라고 생각하시면 큰 착오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항상 악보의 첫 장 제목위에, '칸타타'냐 '오라토리오'냐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대로 호칭하시면 문제될 이유가 없겠습니다.
MAR,3, 2011.
칸타타가 보통 명사임은 맞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총칭'하는 범위 넓은 단어는 아닙니다.
요즈음 부활절을 앞두고 교회 성가대 마다 특별 순서를 마련하고, 연습에 바쁩니다. 예를 들어 , 연습하는 곡 중에는 칸타타도 있고, 오라토리오도 있고, 미사곡도 있고 , 진혼곡도 있습니다. 이 들은 교회음악을 분류할 때 , 곡이 쓰인 목적과 형식에 따라 나뉜 교회음악의 종류들입니다. 칸타타는 보시는 바와 같이 그 종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형식과 목적이 눈에 띄게 다른 미사곡, 진혼곡, 영가 등과는 달리 , 칸타타와 오라토리오는 비슷한 점이 있어 혼동을 할 수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거기에 대해 잠간 설명하겠습니다.
칸타타와 오라토리오의 같은 점은, 우선, 둘 다 17세기 이태리에서 시작됩니다.
성서에 나오는 얘기를 주제로한 대본이 있고, 여기에 곡이 붙여졌다는 것, 거의 모두가 성악곡이며 , 교회당이나 연주회장에서 연기없이 연주만 된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다른점들은,
칸타타는 대본이 , 대개 하나 혹은 몇개의 장면에 국한됩니다. 따라서 공연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음악적으로 비교적 짧고 간단한 서창, 영창, 이중창이 주로 이며, 여기에 하나, 혹은 많아야 두,세 종류 악기의 반주를 받습니다.
덧붙일 형식상의 특징이라면, ' 다 카포 아리아'인데, 아시는 대로, 영창(aria)의 마지막 부분에서 맨 앞 으로 돌아와 (D.C.) , 중간에서 (fine) 끝나는 것입니다.
참고로, 칸타타의 어원은 cantore(노래하다)입니다.
오라토리오는 규모가 칸타타보다 커서, 대본은 대하소설 처럼 긴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연 시간도 훨씬 깁니다. 서창과 영창도 있지만 합창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여기에 상응하는 2관, 4관 편성 오케스트라의 반주를 받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바하의 '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헨델의 '메시아', '에스더', 하이든의 '천지창조', 멘델스존의 '엘리아', 베토벤의 '올리브 산의 예수' 들이 오라토리오에 속합니다.
옃 년 전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가 '리버풀'이라는 오라토리오를 작곡 해, 메스컴에서 떠든 적도 있습니다.
여담으로, 오라토리오의 어원은 그 곡들이 연주되던 ' 사각형 기도실'입니다.
드물지만 그런 희귀한 예도 있습니다.
간단히 결론지어, 칸타타보다 길고, 규모가 크고 , 보다 다양한것이 오라토리오라고 생각하시면 큰 착오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항상 악보의 첫 장 제목위에, '칸타타'냐 '오라토리오'냐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대로 호칭하시면 문제될 이유가 없겠습니다.
MAR,3, 2011.
Wednesday, March 2, 2011
낮은 데로 임하소서
얼마전 알게된 한 목사님의 권유에 따라, 그 분의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주일 아침 열시 반 예배에 가 보니 , 모인 교인은 목사님 세 분과 필자 포함하여 열 두 사람,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을 제외하니 교인은 다섯이었다. 피아노나 올갠은 물론 없고, 컴퓨터 반주로 성가를 부르는 교회였다.
설교, 대표기도, 사회 및 축도는 목사님 세 분이 돌아가며 한다고 했다. 그 날 들은 설교는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할 때, 결정을 하기 어려을 때, 과연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가 의문이 생길 때 , 십자가를 생각하면 항상 금방 답이 나온다" 는 실제적이고 간단한 메시지였다.
눈을 감고 들으니, 수 백명 모인 교회에서 듣는 설교와 다를바 없었고, 오히려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대표기도 역시 '중언 부언' , '광고' 없는 간결한 기도였다.
예배 순서도 전통 예배 양식에 따라 조용히, 경건하게 진행 되었다.
교인들의 수다스러운 "아멘" 소리도 거의 없었다.
예배가 끝나, 차를 몰고 돌아오는 길에, 또 그 후 며칠 동안 계속 이어지는 의문에 혼자 묻고 대답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목사님 세 분과, 교인 다섯이 모인 교회는 '수준있는' 예배를 보고있었다. 그런데 왜 교인이 없지? 세 분 목사님은 내가 겪어 보고, 아는 큰 교회의 목사님 들과 비교해서, 적어도 밖으로 보기에는 전혀 '빠지는 데' 가 없었다. 그리고, 적지않은 숫자의 목회자가 '아집'과, '잔머리'와, '소통 부재'로 말썽을 빚고있는 " 큰교회"들과 영상이 오버랩 되는 것이었다.
교단에 의해 마련된 , 적어도 최저한의 생활과 신분보장이 , 그렇게 '아전인수', '안하무인' 격인 목회자들을 많이 만들어냈을까? 또 왜 이런 '세 목사, 다섯 교인' 형태의 교회가 존재하게 되었을까?
요즈음 부쩍 신문 지면을 채우는 , 그래도 꽤 '이름있는' 목회자들의 언행이 ' 수준이하', ' 무식' 내지 ' 몰 상식'함을 보면, 더욱 혼란스러워 진디. 그 분들은 과연 시민으로서의 기초교육, 즉 , 중, 고교나 제대로 나온 사람들인가?
제대로 된 졸업장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상식과 한참 동 떨어진 얘기를 태연히, 고개 세우고
할 수있는 그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자기의 '인기'를 믿는가, 아니면 자기가 하나님을 ' 대변'한다는 '신념'내지, '소명 의식', 혹은 ' 자기확신'에서 연유한 것인가?
그렇다면, 당신이 '대변'한다고 믿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런 분들을 '소수' 내지 '극히 일부'라고 지나가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 많다.
자,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세상은 간단치 않아 , 뚜렷한 답을 얻지 못함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우리는 그냥 "세상은 그러려니 "하고, 관심 끄고 조용히 살아야 하나?
MAR.2. 2011.
주일 아침 열시 반 예배에 가 보니 , 모인 교인은 목사님 세 분과 필자 포함하여 열 두 사람,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을 제외하니 교인은 다섯이었다. 피아노나 올갠은 물론 없고, 컴퓨터 반주로 성가를 부르는 교회였다.
설교, 대표기도, 사회 및 축도는 목사님 세 분이 돌아가며 한다고 했다. 그 날 들은 설교는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할 때, 결정을 하기 어려을 때, 과연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가 의문이 생길 때 , 십자가를 생각하면 항상 금방 답이 나온다" 는 실제적이고 간단한 메시지였다.
눈을 감고 들으니, 수 백명 모인 교회에서 듣는 설교와 다를바 없었고, 오히려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대표기도 역시 '중언 부언' , '광고' 없는 간결한 기도였다.
예배 순서도 전통 예배 양식에 따라 조용히, 경건하게 진행 되었다.
교인들의 수다스러운 "아멘" 소리도 거의 없었다.
예배가 끝나, 차를 몰고 돌아오는 길에, 또 그 후 며칠 동안 계속 이어지는 의문에 혼자 묻고 대답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목사님 세 분과, 교인 다섯이 모인 교회는 '수준있는' 예배를 보고있었다. 그런데 왜 교인이 없지? 세 분 목사님은 내가 겪어 보고, 아는 큰 교회의 목사님 들과 비교해서, 적어도 밖으로 보기에는 전혀 '빠지는 데' 가 없었다. 그리고, 적지않은 숫자의 목회자가 '아집'과, '잔머리'와, '소통 부재'로 말썽을 빚고있는 " 큰교회"들과 영상이 오버랩 되는 것이었다.
교단에 의해 마련된 , 적어도 최저한의 생활과 신분보장이 , 그렇게 '아전인수', '안하무인' 격인 목회자들을 많이 만들어냈을까? 또 왜 이런 '세 목사, 다섯 교인' 형태의 교회가 존재하게 되었을까?
요즈음 부쩍 신문 지면을 채우는 , 그래도 꽤 '이름있는' 목회자들의 언행이 ' 수준이하', ' 무식' 내지 ' 몰 상식'함을 보면, 더욱 혼란스러워 진디. 그 분들은 과연 시민으로서의 기초교육, 즉 , 중, 고교나 제대로 나온 사람들인가?
제대로 된 졸업장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상식과 한참 동 떨어진 얘기를 태연히, 고개 세우고
할 수있는 그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자기의 '인기'를 믿는가, 아니면 자기가 하나님을 ' 대변'한다는 '신념'내지, '소명 의식', 혹은 ' 자기확신'에서 연유한 것인가?
그렇다면, 당신이 '대변'한다고 믿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런 분들을 '소수' 내지 '극히 일부'라고 지나가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 많다.
자,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세상은 간단치 않아 , 뚜렷한 답을 얻지 못함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우리는 그냥 "세상은 그러려니 "하고, 관심 끄고 조용히 살아야 하나?
MAR.2. 2011.
Subscribe to:
Posts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