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8, 2016

복음 성가 (Gospel Music)의 역사와 한국 교회와 회중 안에서의 현주소.

오늘 날, 개신교 교회 음악에서  복음 성가가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은  과거  그 어느 때 보다도  크고  무겁습니다.
그러나,  막연한 지식과  많은 잘못된  선입견으로 인한 ,  각가지
 오해와  잘못으로   교회와  예배의 본질이  훼손되는   안타까운
사고도   종종 일어남을  봅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큰  그림으로  본  복음 성가의  역사를
알리고,  지금  한국의 교회에서  불리우고 있는  복음 성가들의
역사 상  위치를  조명 해 보며,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생각
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복음 성가(Gospel Music)의  정의(definition)와,  시작,  역사상의
의의는   그  음악이  쓰이는  사회의  문화나,   기독교 적 배경,
사회적 환경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여기서는  크게 보아  모든 사람이  이의 없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 만을  소개합니다.

"복음 성가"는  기독교 음악의  한  분야(genre)로,  성서적이고
기독교 적인  가사를 가진  노래 중, 특정한 목적과 형식으로  작곡되지
않은 성가 들을   총칭합니다.      (예를  들어  오라토리오,  칸타타,
미사곡,  진혼곡 ,예배 성가 등등은  제외)

즉,  부르기 쉽고,  배우기  어렵지 않고,  모두 "참여" 할  수 있는
성악곡임이  그 특징입니다.  그리고, 쓰임이  교회, 교인에만  국한되지 않고;
대규모  공연장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합니다.

처음 시작으로는   17 세기의  "흑인 영가"(Black  spiritual song ,
Hymn,  Sacred music)를  꼽습니다.
구전되어 오는 , 무반주,  노래 중의  특정 단어와 구절 의 되풀이,
손뼉과 발 굴름,  탬벌린 같은  간단한 타악기로  리듬을  맟춤이
 특징 들입니다.   아마  그 시절,  문맹이  많았던  이유, 또 그 사람들이 다
노래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한  배려 때문 이었을 것입니다

1870년에 들어와,    때 마침  시작돤 부흥 운동 (Revival mo-
vement), 또,  영적 각성운동(Holiness-Pentecostal Movement)과 맞
물려  본격적인  복음 성가들이  작곡되기  시작하며,  많은  악보
 출판사들이   복음 성가집을  출판합니다.
이 시절의 작곡자들을  소개하면,  George Root,   Philip Bliss,
Howard  Doane,  Charles  Gabriel,  L Mason,  William Kirkpatrick,
Fanny Crosby들입니다.     다  미국 분 들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거의 매일 부르는  이 분들의 곡은  잠시 후  다시
더 설명 드리겠습니다.

1874년, Plilip Bliss 는  그가  작곡한 성가집을  출판하며 "복음 성가"
(Gospel songs)라는  말을  처음 사용합니다.  이어 1875년, I.D. Sankey가
"복음 성가집" (Gospel Hymns) 1-6권을  냅니다.
이때는  이미 "무반주" 시절을  지나, 노래에  건반 악기와  기타와  타악기의
반주가 제대로  붙어있으며,  더 큰  편성의 반주로  진화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영적 대 각성운동,  부흥운동에 더하여,  1900년대 부터
시작된  라디오 방송망의  확장과  수신기의 보급,  또 일반 가수,Mahalia
Jackson, Jerry Lewis, Yolanda Adams를  비롯해  Elvis Presley , Pat Boone
까지   애창하게 되는 " 복음성가 " 는  1900년 대에 들어와 급격히  대중화
 하게 되며,  따라서  교회 밖으로 나와   널리  불리우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gospel blues,  christian country music, modern gospel,
 contemporary. gospel, southern gospel,  UK gospel, bluegrass gospel 등등
 특징과  지역에 따라  더욱  분화, 발전하게 됩니다;
한국의 복음성가는 굳이 분류한다면 , 점잖은  modern gospel  정도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구교와  기존 개신교에서  쓰여왔던 "고전 성가"에만
익숙한 개신교  회중이  "복음 성가"에 대하여 가진  불만 내지 반감은,
시일이  지나면서  많이  줄었다고 하나 , 전 세계적으로  아직도 무시할 수
 없으며,  이는  성가 자체에 대한  불만족 보다도  연주하는 연주자에게, 또
선곡하는  성직자, 집전자  들에게   더 크고  심각한  책임이 있음을  봅니다.

또 , 복음 성가를  작곡하고  연주하는 분 들도, 흑,백으로  나뉘어  "복음 성가
명예의 전당" 도   둘로 나뉘어  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그 동안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 온 이래로 120년 남짓 한데,
그 동안   "복음 성가"와  우리  회중과의 관계를  살펴 보십시다.

앞 숫자는  한,영 찬송가의  장을 표시합니다.  널리 알려진 작곡자의 복음
성가 중,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가 만  고르다 보니,  빠진 성가가 많습니다.

L. Mason
44 찬송하는  소리있어                    56 지난 이레 동안에
57 즐겁게 안식할 날                        196 날 구원하신 예수를
248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273 저 북방 얼음산과
364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379 주의 말씀 듣고서

W.J. Kirkpatrick
340 구주 예수 의지함이                  331 나 주를 멀리 떠났다
179  이 기쁜 소식을                          252 기쁜 소식 들리니
414  주의 사랑 비췰 때에                446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455  주 안에 사는  나에게               483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Philip Bliss
185 내 너를 위하여                         276 하나님의 진리 등대

G.F.Root
299 예수께서 오실 떄에

Howard  Doane
187너의 죄  흄악하나                    219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236 주예수 크신사랑                     315  돌아와,  돌아와
337  인애하신 구세주여                377 예수 따라 가며

M.W. Moody
465구주와 나 함께 죽었으니

I.D. Shankey
397 주 믿는 사람 일어나                412 우리는 주 님을 늘 배반하나
478  주 날개 밑, 내가 편히 거하네

C.H.Gabriel
543  저 높은  곳을  향하여              208 주 예수 내 마음에  들어와
289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541  주여 지난 밤내 꿈에 뵈었으니

위의  목록은  찬송가에 등재된   복음성가의  제목 들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 구분 없이  하루 종일  "복음
성가 " 가스펠 송과,  아는 중  모르는 중, 집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같이  지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역설적으로 ,  한국의 기독교인  개개인 들은,  원인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저항 없이  "복음 성가"를  받아들여 , 집에서  교회에서  생활의 일부가 되도록
 한,  "선구적 역활"을  한  , 세계적으로  드문  예 들 입니다.

그런 분들이  교회 대 예배에서 복음 성가를  부른다고  논난을  벌인다?
뭐가, 앞뒤가  한참  안 맞습니다.

원인은  복음성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있고,  그래서 쓰고싶어도
" 제대로 쓰지 못 한데" 있습니다.

찬양  팀도  성가대 처럼, 전문인의 지도 하에, 당연히  피나는  음악적 기본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복음성가 연습,연주를   "여흥" 정도로  쉽게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뭐가 뭔지  모르기때문" 입니다. 그저 남이 그렇다니 "그런줄  짐작하고"
같이 어울려  근거없이 "우기고"  지나다 보니  그렇습니다.
평신도 만이 아니고  책임있는  목회자까지 그렇게 지난다면, 더이상  무슨 얘기
를  할 수 있나요?

많은  목회자,  예배의 집전자가   복음 성가도  고전 성가와  마찬가지로
집전하는  의식의 성격과,  흐름에 따라  적재 ,적소에 쓰이도록,  그리하여
 그 의식이  뜻있고,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즉,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공부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아무 곡이나  선곡 할 수 없는, 그  한계가  아주 분명합니다.

 모르면  알아야하고  알기 위해서   공부하고 ,연구해야함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많은  수준 이하의  복음 성가가 나왔음은   사실이나,
 시간이  지나, 대부분은 " 자연  정리"가  되었고,  요즈음 나온  성가 중에는
수준 이상의 인상적인 성가가  꽤 눈에 띕니다.

복음 성가를 연주하는  연주자와  더 큰  그림을 그려야하는  목회자, 집전자
께서  자기 역활에  더욱 충실할  때,  복음 성가는 교회 음악으로서, 또 사회적
예술의  한 분야로   제 기능을  다 하리라고   확신합니다.

간단히  복음성가의  역사와  한국 에서의 현  위치를  점검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 !



May   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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