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27, 2018

'빵, 빠아-' 의 기억.

지금 부터 약 65년   전,  저의  어린  시절   다섯 살  부터  열 살 까지는  한국 전쟁과
휴전 ,수복 및  환도의  시절 입니다.
 어렵게  살던  그 시절에도  명절은  지켜져서,  음력 설,  추석,   크리스마스에는
간단히  이웃 들과  떡 , 사과 정도는 나누었습니다.

위의  '빵, 빠아-'는   그 때   추석 날의  기억 입니다.
'빵'은  딱총 소리,   '빠아 -'는  새의  깃털이 붙은   대나무 대롱에  풍선을  달아,
풍선을  불고 난 후,  풍선의  공기가  새어 나오면서   대롱  끝의 '떨판' ( 요새의
유식한  말로는 리드( reed) 정도 되겠음)을   떨게하여  나는   소리 입니다.

추석 날  아침  눈을  뜨면,   우선  집 밖에서  동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부터
들려오고,  여기에  평소와는  다른  '빵,  빠아-'가  섞여 있었습니다.

값이 싼  딱총은   나무를  잘라  모양을  만들고,  고무줄로  맨  '공이'를  뒤로 후진,
고정 시켰다가  이  '공이'를  슬쩍 위로   밀면,  앞에 끼어놓았던   ' 종이 화약'을
때려  "빵"  소리가 나게  되어 있었는데,   한  열 방 쯤 쏘고 나면 나무가  갈라지는
 수명이   짧은  '총' 이었습니다.

조금  비싼  딱총은   납으로  주물을  떠서  만든  금속제 였는데,   이것은  '공이'를
뒤로 젖혀  고정했다가  방아쇠로  받침을  풀면, 공이가 종이 화약을  때려  소리를
내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이 딱총은   비싸면  코 묻은  돈의  '구매 의욕'이  낮아질까봐  원가를   맞추느라고
얇고   크기가  대단히   작아서    꼬마 들의 손에도  작을 정도였는데  금속제여서
인지  제법  내구성이   있어   잘  보관하면  음력 설  까지  몇 달도 가는
총 이었습니다.

그 시절  골목에서  남자 꼬마들의 놀이는  '구슬 치기'  '딱지 치기' 외에
'제기 차기'  '자치기' 정도가  있었고,   골목 마다    종목에 따라 
고수급  챔피언이  있어,  다른  골목의  챔피언이  가끔  나타나  '타이틀맷치'
비슷한  것도  열렸고   다른 동네  골목으로  원정을  가기도  했습니다.

구슬 치기는  주로  적당한  거리에  구멍(hole)   을  두 개  파 놓고  거기를
구슬을  굴려    오가며  다른  사람의  구슬을  맟추는  것 이었는데,
동네 마다   규칙(rule)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    가끔  다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딱지는   대강  조금  두꺼운  마분지 같은  종이에  그림을  인쇄한  것을
구멍 가게에서  구입하여  잘라서 썼는데  몇 번  치고나면  너덜너덜 해지기
일쑤여서   보통  치기 전   딱지의   '품질'을  규정하고  시작 했었습니다.
바람에  딱지가  뒤집어지면  친  사람이  그 딱지를  갖는  간단한  '룰'(rule)
이었습니다.

자치기는   연필 보다는  두꺼운   두개의    작은  봉(rod)   을  사용하여
 차례 차례   서너가지  방법으로  봉을  쳐서  멀리  보내는  놀이 인데
 친  사람이    '몇 자'라고  부르면  반대 편에서 '몇 자'라고   자기  의견을
 내어   서로    동의해야  '공식 기록'으로   인정 ,  숫자가  더해지는
  민주적인  방법을   썼습니다.

제기 차기는  우선   조그만  둥그런  납 판에  구멍을  뚫고,  털 실을  몇 개
달아  잘  보이도록한,  중심이  잡힌  제기를  만들고
한  발로 서서  다른  한 발  안쪽( in-step)  으로  그  제기를  차는  것인데,
또박 또박  차는  '땅 강아지'가  주  경기 방법이었고,   다르게  차는  방법은
기술적으로 어려워서인지   대중화 되지  못하여,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위의  골목 게임 들은  나이가  들어  대개  국민학교(초등학교)   2,3 학년이면
졸업하게 되고,   다른  게임으로  종목이  바뀌게 됩니다.
대개  '공 놀이'로  옮겨갔는데,   조그만  고무공을  사용하는  '골목  축구'나
간소화 된  초보 야구 비슷한  '하루'(?),  '찜뿌'로  갔습니다.
그러다가  2,3년  후면   제법  정식  틀을  갖춘   축구,  야구 쪽으로  가는
  것이  통상의  코스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도  추석 무렵  항상  생각나는  것은    골목에서  왁자 지껄  꼬마들이
떠드는 소리와  '빵, 빠아 -'  소리 입니다.

요즈음은    주거  환경이  변하여,  위와 같은  '골목  시스템'은    벌써  없어
지고,  '어린이  축구 교실',  '어린이  야구 교실',  또  동네 마다   성인  코치
가 있는 어린이  축구,  야구 팀이  있거나, 혹은   집 안에서 하는 컴퓨터 게임으로
옮겨간  듯  합니다.
위의  얘기들은   이미  역사의 일부가  되어  지금  70대 이상에서나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곱씹어 볼  수록 ,   추석의  '빵,  빠아 -' 는   정말   고마운    추억 입니다.

 

Sept,  27 .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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