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7, 2011

'전람회의 그림'(pictures of exhibition)에 생각 해보는 단상

먼젓번  주말,  C 선생의  서양화 전시회에   다녀 오다가,  내친김에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1839-1881)의 '전람회의  그림' 악보를  다시  읽기로  했다.

그런데  예상대로  첫 대목 부터  막힌다.    promenade는  맨  처음 전주곡이며,  다음 10곡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간주곡들과  주제가  같다.  무소르그스키의  대변인  격인  친구   블라디미르  소스토브에 의하면    이것은  입장하여   걸어들어가는  대목이다.
상식적으로   걷는다면,  이는  4/4나   2/4 일 것이다.    그런데  첫  소절은  5/4 , 다음소절은  6/4이다.
그럼  11박자인가?      그리고  이 엇 박자  주제는  이 후에도   계속  나온다.
첫 소절  다이나믹은   강한  Forte다.  아울러   빠르게(allegro),   약간  끌면서(poco  sostenuto) 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똑 바로  걷지 못하는  사람이,   쿵쿵 다리에  힘을 주어,  끌면서   걷는다?     그렇다면,   술  취한  사람인가?
그리고  보니,  무소르그스키가   나이 13세, 러시아  근위병  사관학교에 입교 했을  때 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사가들은  기록하고있다.     그는  드물게  ,어릴적 부터  피아노를 치기는 했지만  , 직업군인 출신의  작곡가요 ,피아니스트다.

이  '전람회  그림'을   작곡하게된  사연이 있다.
그의  친구  화가  빅토르  하트만이 39세로 1873년  세상을  떠난다.  1년 후, 센트 페테스부르그의  화랑에서  유작 그림  400여 점을  가지고  유작전이  열린다.  그중  11점의   그림의 인상을  피아노 곡으로   옮겨  놓은 것이   이 '전람회의  그림'이다.
그런데  악보 원고가  어떤 부분은  연결이  안될  만큼  건너뛰고, 오식이  많아.    후일 림스키  콜사코프가  다시  편집한것이  오늘날 쓰이는   그 피아노 악보다.
오케스트라  편곡 악보는  무려 50여 종이 나와있다.  그러나   그중  모리스  라벨의 편곡  악보가  가장  널리, 보편적으로 쓰인다.
얘기가  잠간 옆으로 흘렀지만,  그가  심한  알콜 중독이었음을  감안하면   이  악보 부분은  이해가  된다.

다시 '전람회의  그림'으로  돌아가자.
첫 곡 gnomus는  우화 속에 나오는 '난쟁이'다.  둘째곡은  '이태리의 옛 성',   셋째 곡은 '  빠리의 튜이률리 궁',  넷째 곡 ' 폴란드의 소 ' 인데  오늘날  그  그림들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각각 모두   특징있는  음악으로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다섯째 곡  '닭들의  춤'에서는 종종거리고  뛰어다니는  모습들을 ,  여섯째  곡  '부자와 가난한 두 유태인'은  대위법 적으로  코드진행은  같으나 , 전혀  다른  두 개의  멜로디가  하나는  저음  현으로,  다른  하나는  높은  핏치의  목관으로  대비를 이루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일곱번째 곡 ,  '프랑스의  시장 풍경'에서는   현으로  표현되는   ' 수다떠는  아줌마'가  일품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말 하는  톤'은   상당히  부드럽다.  이는 통상의  기대를  벗어난다.

여덟번째 곡 ,'카타콤'은  ,아시다시피,  기독교인의  지하 땅굴 묘지다.   컴컴하고  음산한  곳을  등불을  앞세워 헤메는  모습이다.   으시시 하다.
아홉번째 곡,  헛간에  서있는  러시안  풍의  시계인데 ,  음악에서는  거기에다가   날아다니는  ' 마법의 비행'이  더해진다.   첫곡 gnomus의  확대판 처럼  '기괴한' 느낌이다.  중간 느려지는 부분(andante)의  16분음표 3연음부 트레몰로(진동)는   피아니스트가  고생하는 대목이라는 중평이다.

마지막 곡,  익숙한  '키예브의  대문'이다.    키예브는  우크라이나의 중심 도시다.   여기에다 러시아 황제가  전설의 영웅  '보가틸(Bogatyl)'을  기념하는    큰  문을  세우려고  , 디자인을  공모했었는데,  화가  하트만이  응모해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 였는지  모르나, 이 그림대로의 문은  세워지지 않았다.    전 뉴욕 필의  지휘자  추빈  메타가    키예브에 가 보고,    "쪼그만  문에  실망했다"고  얘기한 것을  보면    하트만의  그림 같은 '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무소르그스키의  '문'은   듣는  사람이 얼어 붙을만큼    대단히  웅장하다.


호랑이는  가죽을,  예술가는 작품을    남김으로    후세에  알려진다.
'전람회의  그림'을  듣고 ,  그  예술성과  천재성에  감동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이 있는한,  무소르그스키는   어디서나   외롭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MAR.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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