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있는 상태를 정하는 구령에는 '차렷',' 열중 쉬어', '편히 쉬어', 그리고 끝났다는 뜻의 '해산'이 있다. 그중 부동의 자세인 '차렷' , 움직여도 좋은 '편히 쉬어', 그리고 구속력이 전혀 없는 상태인 ' 해산' 등을 제외하고, '열중 쉬어' 라는 구령이 가장 ' 매력'이 있다.
이 '열중 쉬어'는 정신적으로 '차리고' 있으나, 물리적으로는 약간의 '느슨함'이 공존하여, '오는듯이 가고', '가는듯 오며', 언제든지 즉각 다음 행동에 임할 수 있는 '고수' 다운 여유를 보임이 마음에 드는 것이다.
연주회에서, 그것이 독주회거나,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연주회거나 간에 연주 내용이 가장 주된 관심사 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들으며 함께 보게되는 연주 태도, 즉 무대 매너도 느끼는 감동에 당연히 큰 영향을 준다.
그 중에도 반주가 먼저 나오는 전주 부분에서 연주자 모습과 태도에 따라, 안정감과 여유를 가지고 즐겁게 계속 경청하기도 하고, 더 이상 관심이 없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이 부분에서 정말 고수급인지, 수준급인지 , 그 이하인지 거의 판별이 되는 것이다. '열중 쉬어'가 다른 형태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순간이다.
피아노나 첼로 연주 처럼 독주자가 앉아 있으면 기본적인 큰 변수는 없지만 , 그 앉은 모양새와 얼굴 표정과 눈의 움직임이 우선 보인다. 그 분위기가 차분하고 진지하며 과장된 움직임 같은 부자연스러움이 없으면 청중은 안심하고 다음 부분을 기다리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된다.
그런데 바이얼린 처럼 한 손에 바이얼린, 한 손에 활을 들고 서있는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음악에 몰입하는 자세를 갖기가 매우 어려워 연주자 마다 많은 차이를 보인다.
진지하고, 노련하고 , 능력있는 연주자 일 수록, 유연하며 자세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고, 자연스런 폼으로 바이얼린의 활을 들고 언제든지 연주에 동참 할 준비가 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미숙할수록 악기를 들고있는 폼이 경직되어있고 부자연스러우며
어딘지 어색하다.
합창의 경우, 여러 사람이 함께 서 있어 꼬집어 말하기 어려우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쉽게 감지된다. 집중과 여유는 마찬가지이고, 연주자들이 음악에 대하여 갖는 겸손한 마음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타날 때 , 이는 성공이다. 몇 사람이라도 두리번 거리며 누가 관중석에 앉아있는지 확인한다거나 , 웃는다거나 ,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불성실한 태도는 좋은 분위기를 깨 버린다.
독창의 경우, 자연스럽게 한 손을 피아노 위에 얹고 , 먼 곳을 꿈 꾸듯 응시하며 전주의 선률에 따라가면 청중은 마음을 놓게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도 마찬가지다. 자신있고 연주하는 음악 속에 들어가있는 안정된 태도는 움직이는 지휘봉 끝을 통해 연주자와 청중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몇 소절 만 지나면 지휘자와 그 오케스트라의 수준은 대강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면 음악에서만 그러한가? 아니다.
오래 전 필자는 미스 뉴욕의 심사 위원을 두 해 동안 한 적이 있다. 차음 갑자기 통보를 받고, (보안상 항상 당일 아침에 통보 한다고 함) 집합장소에 가서 심사 요령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서도 얼떨떨한 기분은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심사위원 경력 10년의 고참(?) K 형이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일러준다. "최 형, 걱정할 것 없어요. 우선 나누어진 신상 명세서를 보고, 후보를 보면 누구누구를 잘 눈 여겨 보아야 할지 감이 잡힙니다. 시작되면 무대에 한 사람씩 나와 사회자와 인터뷰를 하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나서 , 뒤로 물러나 길면 30분, 짧으면 5분 가량 '열중 쉬어'하는 식으로 다른 후보 인터뷰 끝날 때 까지 기다려요. 이 때 잘 보세요. 열 중 아홉은 아무도 자기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자세가 흐트러지고, 본연의 모습이 나와요. 여기에 주목하면 점수 매기는건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K 형의 말씀은 심사 요령의 정곡을 꿰 뚫고 있었고 , 필자는 주저함 없이 채점표를 채울 수 있었다.
위의 예 만이 아니고 , 사람이 서로를 알고, 또 자신을 알리는데 있어서도 '열중 쉬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있다.
'알려지는 ' 입장에서는 보다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하여, 사실 이상으로라도 꾸며 보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그러나 ' 항상' 꾸미지는 못한다. 항상 '차렷' 자세를 계속해서 유지하지 못 함과 같다.
따라서, 결국 더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향상 , 요즈음 말로 자신의 '업 그레이드' 만이 , 유일한 남은 선택이겠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 "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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