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삶은 달걀 같다는 소리를 처음들은 것은 미국에 막 오자마자 였으니 38년전 일이다.
아마 미국식 조크로 융통성이 없고 앞, 뒤, 옆이 꽉 막힌 사람이라는 뜻인 모양인데 , 그렇게 부르신 분에게 나는 대단히 고지식하게 보였던것 같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분 께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의사들을 싸잡아 잘 삶아진 계란(hard-boiled egg)으로 분류하셨다.
필자는 그 이후 나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의사분들이 과연 계란 같은 친구들인지 가끔 살피게 되었고 , 얼마 후 그 주장에 수긍이 가는 바 있음을 내키지 않지만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간혹 예외는 있다고 하더라도 같은 직종을 가진 한 집단이 왜, 하필이면 , 남들에게 공통적으로 그런 인상을 주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우선, 선천적으로 그런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10년 이상( 예과, 대학, 수련의 포함) 교육과정 중에 날마다 같은 방향으로 , 같은 방법으로, 교육되어온 후천적 요인이 엄연히 존재함은 부인할 수 없다.
내 경우 , 100명이 같이 예과에 입학하여 편의상 두 반으로 나뉘어 강의 , 실험한 적은 있으나 대부분 하나의 단위로 대학을 마쳤다. 졸업 무렵에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대부분 동기생들의 성격, 품성은 물론 , 어디살고 아버지가 누구며, 형제가 몇 인지 등등 가정 환경의 상당히 깊은 부분까지도 꿰 뚫고 있게된다. 그러는 중 , 모르는 중에 서로가 비슷해 지는것이다.
그리고, 의사를 만드는 교육이 지향하는 곳은 근본적으로 창의력이나 '튀는'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방향이 아니다. 이미 이루어진 학문적 성과나 업적도 , 충분한 검증을 거친 사실들만 중점적으로 교육하며 , 이것을 낙제 않고 따라가기도 매우 바빠서, 다른 생각은 할 필요도 없고, 여유도 없다.
다시 말해서, 항상 내가 '죽고 사는', '생존여부'가 가장 급한 문제가 되고 만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불쌍하다'.
대학 1, 2학년의 기초과정에서는 이런 교육에 덧 붙여서 어떤 명제에 대하여 이론을 전개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사고 방식'을 계속해서 반복, 교육시키기 시작한다. 더 자세히 말하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알고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가능한 모든 결과를 대상에 올려놓고, 증거나 객관적 사실에 의해 하나씩 줄여감으로써 최종적으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매일 반복한다.
즉, ' 역 피라미드 식 전개'에 이어 , ' 피라미드식 수렴'을 세뇌하듯이 계속 되풀이하는 것이다. 휴학, 전과하는 희생자는 대부분 이 때 생긴다. 여기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3학년 임상에 진급하여 ,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서 , 졸업, 수련과 개업을 거치며 또 같은 사고를 계속하는것이다.
이러다보니, 자기 직업 이외의 모든 인생사도 기본적으로 같은 방법으로 이해하고 처리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편하다. 왜? 다른 방법에 대해서는 모를 뿐 아니라, 이미 거부감이 생겨 있으므로-. 따라서 극 소수를 제외한 모든 의사들은 극히 보수주의자 일수 밖에 없다. 새로운것을 수용하는데 대단히 인색하며, 어떤 변화를 수용할 경우라면 그것이 모든 검증 과정을 충분히 거쳐 확실하다고 인정 받았을 때 만으로 국한된다.
이러한 자세가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고, 마찰이 생기고 , 독불장군 , 유아독존 격인 인상을 줄 뿐 아니라 , 심하면 고집 불통으로 따돌림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필자나 동료들은 이 사실을 잘 안다. 그리고, 당연히 남을 더 존중하고 이해하며,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것도 잘 알고있다. 그러나, 행동이 뜻을 따르지 못 할때가 많다.
독자 여러분 께 외람되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얘기는 , 개인적으로 의사와 얘기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이러한 이들의 성장 배경을 감안하셔서, 너그럽게 이해하시고 , 서로가 한 '인간'으로 돌아가 대화할 때, 모든 문제는 순리대로 순조롭게 해결되리라 믿는다.
다시 한 번 간곡히 깊은 배려를 부탁 드린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 "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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