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되면 우리 집 주변은 온통 단풍이 들어 전혀 다른 별천지가 되고 , 이 갖가지 노랑 , 빨강색의 아름다움에 묻혀사는 호사는 약 한달 가량 지속된다. 40년전 군의관으로 설악산 근처에 근무 할 때는 가을 철 만이 아니고 , 운 좋게 봄철 내내 철쭉꽃의 진홍색에 파묻혀 지낸 적도 있었다.
한 아름 꽃다발을 받고 , 그순간 기쁨과 감사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꽃 들이 안팎으로 환영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확실한 두 곳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한곳은 병원과 병실이고 , 또 다른 한 곳은 전문 음악인의 연주회장이다.
의사의 오피스에 도도하게 꽂혀있는 한 송이 장미나 , 난은 틀림없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다. 요즈음의 조화는 기술의 발전으로 , 코 앞에서 만져보아야 겨우 구별할 구 있을 정도로 정교하다.
병실에 꽃을 사 들고 가면 환자는 반기지만 , 담당 간호사나 의사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못 함을 눈여겨 보시기 바란다. 왜? 이것은 꽃가루나 꽃향기에 의한 알러지가 그 환자 본인 만이 아니고 전체 오피스나 병동에 흔히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오래전 C군의 비이얼린 석사과정 졸업 연주회에 간 적이 있다. 성실 하기로 이름난 C군인지라 적지 않은 숫자의 관객이 객석을 채우고 , 연주회는 성공리에 끝났다.
인사차 찾아간 무대 뒤에는 꽃 다발 들이 쌓여있었고, 동료 음악인들은 인사와 함께 조그만 봉투 하나씩을 건네고 갔다.
관객들은 거의 돌아가고, 꽃다발을 향해 난감한 표정을 짓던 C 군은 남아있던 동료 몇 사람들에게 그 꽃다발을 하나씩 안겼다. 그리고 가지고 갈 수도 없거니와 가져가서 꽂아둘 곳도, 또 돌볼 수도 없으니 , 가져오신 분 들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나누어 갖자고 했다.
그렇게 하고서도 남는 꽃들은 무대 위에 남겨둘 수 밖에 없었고 , 아마 청소부에 의해 쓰레기 통으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조그만 봉투들을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액수이기는 하지만 같이 고생하는 동료들의 정성이 담긴 몇 장씩의 10불 , 20불 짜리 지폐들이 얌전히 들어있었다.
이 때 필자는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선물이란 주는 사람만이 아니고 받는 사람이 또한 엄연히 존재 한다는 사실을 새삼 새롭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봉투 속 지폐들의 액수는 꽃다발 값의 몇 분의 일에 불과했지만 , C군에게는 실질적으로 확실한 큰 도움이 되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 작은 졸업 연주회의 사건이었다면 , 더 규모가 큰 연주회에서는 이에 비례하여 일이 더 커질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꽃을 선물 할 때, 이것은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 통행' 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만하는 대목이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 "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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