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7, 2011

폭설의 추억

호강스러운 소리겠지만 , 이번 겨울은 예년과 달라 눈 때문에 거의 매주 하루씩은 "합법적"으로 쉬고 보니, 일 하는 곳에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고 때로는 지겹기도 하다.
사십 년 전  한국에 살 때는 눈이 많이 와서 학교나 일을 쉬어 본 적이 없으니 더욱 그러하다.            1970년 군 시절 ,눈 덮인  강원도 산 골짜기 텐트 안 에서  읽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맨 첫 대목 ,눈이 무지무지 쌓인 혹가이도의 풍경이 이럴까  가끔  생각한다.                                                                                                                                                                    
국민 학교  3학년  때라고  기억된다.          겨울 방학 과제물의 하나로 눈 쌓인 동네를 그린 풍경화를 그려갔다.  그런데  이 그림이 과제물 전시회에서 제일 큰 상인' 특선 ' 후보가 되어 심사를 받게 되었다.   우연찮게  그 심사장을 지나다가 열 띄게  갑론  을박하는 것을 듣게 된다.    물론 심사위원 들은 미술이 전공이 아닌 3학년 담임 선생님들  이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다른 친구의 그림이 내 그림을 밀어내고 특선에 뽑히는것이었다.         이유인 즉,"이 그림이  색 칠이  더 되어있다"는 설명이었다.          그  어린 마음에,"아니,눈 그림자는 회색, 노랑색으로 처리했고,눈 쌓인  부분을 도화지의 흰색 여백  그대로 둔 것이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억울한 김에 우리 반  담임 선생님 께 볼 멘 소리로 말씀 드리니,그냥  미소로만  답 하신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별로 큰 상도아니니,  그냥 대강 정하고  지나갔으리라고  지금은 이해를 한다.   하지만 그때는 어찌나   '화딱지'가 나던지 지금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얼마전 친지 한 분이  오 탁번  시인의 "폭설" 이라는 시를 보라고 하셔서 인터넷에서  찾아 읽었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은 " 아! 이런 시도 있구나!"  하는것이었다.
 적당한 외설도 욕설도 전혀 거부감이 없고 ,밉지도 않고,  오히려"아하!'하는 탄성과 함께 마음을 움직여 나를 미소짓게 했다.       이장께서 막걸리 잔 깨나 드시는  텁텁하고  걸걸한  목 소리로 고함치는 찐한 남도 사투리가 내내 들려 오는것 같았다.

 다음 주 일기예보를 보니,또 "폭설"이 온다.       이번에 눈에  갇히면  바그너의 "뉴른베르그의   명 가수" 서곡을  우리집 아랫 층 벽이 쾅쾅 울리도록 ,볼륨을 높여 들어보려 한다.


                       폭설
                               오탁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 끝  외진 동네에
어느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조 ㅅ  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  밤에   자 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  나부렀소 잉!    어제 온 눈은 조 ㅅ 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 잉"

왼 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 들은        회관에 모여 소주를  마셨다.
그 날 밤   집집마다      모과 빛  장지문에는         뒷 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 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 눈으로   뒤 덮여있었다.
하느님이 행성 만한  떡 시루를 뒤엎는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조 ㅈ 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 목에 놓인 뒷물 대야를 내 동댕이 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주민 여러분!      워따 , 귀신 곡 하겟당께!          인자 우리동네  몽땅  조 ㅅ 돼 버렸소잉!"

                                                                                        Feb.7.  2011.

2 comments:

  1. 유년기의 추억은 늘 따스하고 아름답습니다. 얼른 드는 생각에 별로 그렇지 않다고 느껴지는 추억조차 참으로 소중하고 그립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지난 다음에 우리는 오탁번의 「폭설」을 읽고 눈을 가늘게 뜨면서 어떤 상념에 휩쓸리는 겁니다. 폭설조차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임을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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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서 형,
    오케스트라 공연을 앞두고 신문로 S고에 팀파니 빌리러 갔다가 몽땅 피 본 기억, 생각 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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