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5월, 달성군 성서면 ㅇㅇ사단 신병 교육대 연병장, 필자는 한창 ' 엎드려 뻗쳐' 를 하는 중이었다. 초 여름의 땡 볕은 사정없이 내려 쪼이고, 땀 방울은 줄 지어 흘렀다. 얼굴과 등짝은 따갑다 못해 쓰라렸다.
조금 더 참을까, 아니면 다 내 팽개치고 구대장하고 한판 붙을까 , 한계 상황에 직면한 찰라, 기압은 끝났다. 먼지와 땀 범벅인 얼굴이 심상치 않았던지 그 지방 K대 출신 김군이 소매를 끌었다. " 후보생이 우짜노 , 마, 참그라." 불붙인 꽁초를 내밀었다. 그 때 깊숙히 들여마신 '화랑 담배' 연기의 그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신기하게도 서너 모금 뿜고 나니 마음의 평정이 오는 것이었다. (이 때의 구대장 M 소위 하고는 훈련 끝나기 전날 밤 막걸리 한 잔으로 화해했다.)
집 안에 담배 피는 분이 없던 때문이었는지 , 흡연에 별 관심없이 중, 고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 시절도 덤덤하게 지난 셈이다. 더구나 본과 1학년 해부학 시간에 배당된 실습용 '카데바'가
공교롭게도 생전 애연가 였던지 가슴을 열었을 때 먹물에 담근 스폰지 같던 폐와 검은 굴뚝 안 같은 기도를 보고 꽤 충격을 받았다. 그랬는데 , 졸업 후 입대하여 훈련소에서 무상 배급하는 화랑 담배로 시작하여 가끔 하루 서너 개비씩 태우는 경지에 이르렀고 , 그때 미국에 왔다.
온 지 일주일 만에 병원에서 수련을 시작 했는데, 이 때는 낮도 없고 밤도 따로 없었다
남는 시간에는 졸기에 바빴고 , 담배를 태우려면 끽연실 까지 가야했다. 이러다 보니 , 담배와는 자연히 멀어졌고 관심도 끊어졌다. 돌이켜 보면 참 큰 행운이었고 지금도 감사한다.
하루는 시니어 레지덴트 때 응급실 당직을 하는데 , 회진 때 가끔 우리를 가르치던 D 박사가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휠 체어에 실려왔다. 그는 심장 내과 의사였고 , 손에는 필터 없는 '고전 담배'가 항상 들려있다시피 했던 애연가였다. 병명은 '심근 경색'이었고 얼마 후 저 세상으로 갔다.
요즈음에도 오랜 흡연으로 폐기종이 되어, 앉아있어도 숨이 가빠하는 여러 분을 흔히 접한다.
이 경지에 이르면 금연한다 해도 현재의 상태에 그칠 뿐, 옛날로 돌아가는것은 불가능하다.
즉, 근본적 회복이 안 되는 것이다.
참 안타깝기 짝이없는 일이고, 앞에 앉아있는 나까지 덩달아 가슴이 답답해 지는것 같다.
초기에 담배를 서구에 소개할 때 중대한 역할을 한 젠 니코나 월터 로리는 , 그 당시 이 중대한 문제는 당연히 몰랐을 터이다.
지금은 의학적으로 흡연의 부정적인 면이 공개적으로 알려지고 강조듸어 흡연자는 어디서나 괄세를 받는다. 의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인생사는 그렇게 간단치 만은 아니하다. 훈련소 시절 , 화랑담배 연기의 효험을 인상 깊게 경험한 필자에게는 흡연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에는 마음 한 구석에 담배에 대한 연민의 정이 짙게 남아있다. 금연 한 다음 또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결국,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것 같다.
담배는 건강에 해롭다. 특히 심장, 폐 기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필히 먼저 아시기 바란다. 여기까지가 주위 사람과 의사가 할 수있는 일이다.
충분히 알고 난 다음에도 꼭 피워야겠다면 , 본인이 후회없는 결정을 하시라. 이것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 흡연으로 잃는것이 얻는것 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 크다는것이다. 또 나중에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 이미 때는 늦었다는 것이다.
통상적인 의사의 '겁 주기'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란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축하드립니다.
ReplyDelete블로그를 여시고 건강상식과 종교음악의 이해, 그리고 삶의 지혜를 얻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아스토리아 김장희
감 장로님,
ReplyDelete새로운 곳에서 , 새로운 신앙의 보람 찾으심 축하드립니다.
감사 드리고,
우리 항상 뵙시다, 옛 날같이-
최진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