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February 25, 2011

단식은 과연 '청소'인가?

독자 한 분 께서   " 우리의  위장  안을  청소하기  위하여  가끔  몇 날씩 단식하는것이  좋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으셨고  ,  다른  한 분  께서는  "숙변을  때때로  제거해야 한다는데요" 하고 물어 오셨다.   말씀 중  '숙변'이란  무엇인가고  물으니   장 안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찌꺼기 변을 얘기한다고  말씀하셨다.
결론 부터   말씀 드린다면 , 장 청소를 위한 단식은  필요 없으며   '숙변'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위에서  액체는 반 시간 가량 머물고 , 고형 음식은  죽 같이 되어서  서너 시간 후면  모두  소장으로  흘러 내려가고,  위는 비게된다.  그래서  배고픔을  느끼며 , 다음  끼니를  먹는다.
소장의 길이는  6미터  쯤 되는데  여기를 지나면서  영양분은  장 벽을 통해  흡수된다. 그리고  그 다음  2미터 쯤 되는  대장을 지나며  수분이  흡수되고 ,  그 나머지  찌꺼기는  직장에  모여 있다가  항문을  통해  대변으로   밖에 나간다.
우리 위장은  굳은 금속이나  프라스틱  파이프가 아니고 ,  말랑말랑하고  탄력있는 , 움직이며  시시각각  모양이 변하는  튜브다.   그리고  위장의  벽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도  항상  규칙적으로  한 방향 ,  즉  출구인  항문 쪽으로  내용물을  이동시키고있다.
옷에  흙탕물이  튀었다고 하자.  여러분은 우선  마르기를 기다린  후,  흙 묻은 부분의  천을  서로 비벼 문질러   흙 부스러기를  떨어져 나가게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항상  움직이고  있는  장  벽에  어떤  물체가  장 시간  붙어있는 것은   불가능 한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장 관 중에는  한적하고  인적 드문 골목길  같은 곳도  있을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있다.   그러나  우리의  장 관은  계속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항상  같은  모양의  길이 아니며 , 어떤 때는  큰 길도  되었다가   골목길도,  작은 길도  될 수있다.   그래서  통행없는  한적하고  막다른 길은  없다.     참  오묘하다.  ( 맹장, 계실 등 예외가 있으나  오늘  드리는 말씀과는  관계 없으니  그냉  지나가자.)
따라서  일컬어  '숙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 장 내용물은  음식물 만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액 , 담즙 , 장액,  췌장액등이 나와   계속해서  장 관 안을 흐른다.  한  예로  췌장에서 나오는  소화액만  하루에  2리터 ( 큰 됫박으로 하나)가량 된다.
만일  병적인  이유로  장 관이  막히거나  개복 수술 후  장 운동이  일시적으로  멈추면  , 위에서  말 한  소화액들은   더 내려가지 못하고  장 내에  고여   장 관 안의 압력이  높아지고 , 역류하여  위로 올라와  토하게된다.       이때에는  밖에서  튜브를 꽂아   고인만큼  기계를 통해  밖으로  뽑아내며,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하게하고   장 자체의  운동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생물학 적으로  보아  인간은  절대로 특별하거나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며    단지 하나의   '고등 동물'일 뿐이다.    물론  다른  동물과 달리  지능이 높고,  정신 세계를  가지며 , 깊은  사고를 하고,  고 차원적인  예술 활동,  영적인  신앙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얘기가  될지  모르겠으나 , 인간의  기본  구조나  살아가는  원리는   다른 동물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사람이  살아  움직이기 위하여  배고픔을  느끼고   하루  두 세번  먹는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리고  사람의  장은  뇌의  조정에 따라   항상  저절로  움직여  계속해서  밀어내며  '자체 청소'를  하고있다.
인간의  몸은  우리가   상상하는 정도의   '간단한  기계'가  아니다.
옛 부터  사람의  몸을   '소  우주'라고  일컬었듯이   "더 알수록  더 모를  존재"임을  항상  느끼고있다.
인간이  언제나  신  앞에  겸허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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