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28, 2011

정직하자.

지금 60대 이상  되신분들은 , 그 옛날  '학원'잡지에  연재되었던    조 흔파 선생의  소설  '얄개전'을 기억하실 것이다.  여기에는  기독교  미션 스쿨  KK중학  1학년  '나 두수'군이  주인공  '얄개'로 등장한다.
그는  그나이에  '장난'으로  일가를  이룬  '선수'다.  예를 들어, 국어 시간에  시를  지으라면 "남쪽나라  십자성은  어머니 얼굴 " 과 같은  유행가 가사를  감정을  넣어  읊어  영문 모르는  선생님을  감동 시킨다거나 ,소풍날  멀리  걷기 싢어서  직원회의중이신  선생님들의  신발들을  신발장  안에  뒤죽 박죽 섞어놓아    출발이  늦어져서  간단히  가까운 곳에  갔다 오게 한다거나 하는  등등이다.
하루는  이  나두수 군이  교내  웅변  대회에 연사로 출전하는데  그 연설  제목이  '정직하자'이다.
물론  그는  단짝 친구 '용호'를  객석에  앉히고  ,"꽝" 하고  연단을  칠 때마다   목청 껏 "옳소"나  "잘 한다"를  외치도록  치밀한  사전  포석 까지  해 놓는다.
순서가 되어, 사회자가  연사와  제목  '정직하자'를  소개하는  순간 , 강당 안은  대 폭소가  터지고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만다.      뭐?   ' 나두수 '가   '정직하자' ?        연결 불가,    와하하하!      이  북새통에    '선수'는  애써 외운  원고를 다 잊어먹고  , "꽝"." 옳소",  "꽝", "잘 한다."만  수 십 차례 반복한 뒤,   유유히  "아-멘" 으로  마무리하고  단을 내려온다.

서론이  길었는데, 다른 얘기는  다  접어두고,  필자는  이  연설제목  '정직하자' 가  마음에   꼭 든다.    왜냐 하면  매일  "정직했으면" 하는  생각을  몇 번 씩 하기 때문이다.
환자분이  의사와  처음  마주앉으면   왜 오셨느냐, 어디가  불편하시냐를  자연스럽게 묻고  대답하는 중에  문제의 성격과  방향 ,  검사와 진단의  윤곽을  대강  파악하게 된다.
이것을   '문진'이라  부른다.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라 , 문제가  복잡하면  반 시간 이상  걸리는 수도 흔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서로  '정직'하지 못하면   정력과  시간만  허비하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
일단  가장  불편한 증상이 무엇인지  알려지는  순간  , 의사의  머리속에는  그 증상과 관련된  가능한  모든  문제가    컴퓨터  스크린 처럼  그려지며   다음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는  동안  더해지고  빼지고 조정이 되며  , 또  자세히 보아야 될  사항이  함께 떠오르고   ,  이는  시진  촉진  과정을  거쳐가며  더욱  걸러져서 ,  진찰이  끝 났을 때    의사는  그 단계에서  판단되는  문제는  무엇이며  ,  앞으로  무슨  검사와  치료가 필요한가를   얘기할 수 있게된다.
그런데, "  그냥  검사하러 들렸습니다." "나이가 들어  한번  건강 체크 해 보려구요."하시는  분 들이  의외로  많고 , 그러다 보면  찻  출발 부터  잘못되기 일쑤다.
단언하건데,  필자의  경험을  보아  '그냥' 의사를  만나러  오신 분은  한 분도  안 계시며,  ' 문제'가 있어  걱정하고  고민 끝에  이리저리  피해보다가  마지막에  찾아 오신것이다.
다행히  의사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서,  이것 저것 '문제'와  관련 없는듯한    질문을  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 이 단계에서  솔직한 대화가  이루어져 다음부터  순조로운 과정을  거치게된다.
그런데, 이 과정도  끈질기고  용케(?) 피하여  지나쳐서   진찰과  마지막  설명이 다 끝난 순간,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시는 분도   드물지만 있다.
이 순간 , 맥 빠지고  화가 치밀지만   밖으로  나타낼 수는  없는 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수 밖에 없다.
물론  끝 까지 바로  얘기하지 못하는데는  수줍어서,  부끄러워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마음이  약해서 등등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이해하고  남는다.
그러나  일단  의사를  만나기로  마음을  정 했을  때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뚜렷한  목적이 있고,  이  목표가  담당의사와  같을 진대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환자와  의사의 사이는  신뢰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다.
보다 나은  관계를  위해서 ,  더욱  마음을  열고,  서로 의논하는   환자와  의사가  되도록  노력해 보시자는  당부를  드려본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

Sunday, February 27, 2011

"링게루' 에 대한 소고

1970년  동해안에서 군의관으로 일할때의  이야기다.
하루는  약제병  이병장을  데리고  해안  초소에 가서  환자를  보고 오다가  시간이 되어  이름 모를 포구  횟집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아주  대접이  융숭하고 (?), 나올 때  돈을  받기는 커녕  대단히  감사하다며  깊숙히  고개숙여  인사까지 하는 것이었다.
사정을  알아보니 , 얼마전  이 병장이 5% 포도당 액  500cc 짜리  한 병을  민간인을  위해  쓰겠다고 하여  'OK' 하고  잊어버렸는데  이 병장은  큰 인심쓰듯  그것을  횟집 주인에게  주었고 ,  그 주인은  큰  보약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분에 넘치는  대접을  한 것이었다.
내 참,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30년이  훨씬  더 지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의 중심  뉴욕에서도  그 비슷한  전화를  받고  아연할 때가있다.   "링게루 한 대 놔 주세요"  , "알부민을  맞고 싶은데요."등등.

정맥을  통한  수액 공급은  효과가 빠른 반면에  감염이나  심장,  혈관계에  부담을 줄 수있는 위험이 있어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하게 되어있다.     즉,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계속  토하거나,  수술 전,  혹은  소화관이  막혔다거나 , 수술 후  장 운동이  돌아오지 않았다거나,  의식이  없다거나,  삼키지 못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되겠다.        또   보다  강력한  효과를  얻기 위해  약물을  정맥에  직접  투여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다.
우리가  보통  일본식  발음으로  '링게루' 라고 부르는 것은  링거씨가  처방한 ' 링거스  락테이트' 라는 것이고   포도당은  음식이   소화 흡수되어   에너지화 하기 전  물질로서    설탕물  비슷한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30년전  대 유행한  알부민은  혈 중에 녹아있는  단백질이다.
다시말해서,  수액은  입을  통해  먹지 못할 경우에는  '보약' 이 되겠지만  잘 먹을수 있는  사람에게는  사탕 , 불고기 , 스테이크 , 볶음밥 등과  하등 다름없다는  얘기가  되겠다 .

알부민 얘기를  잠깐  더 해보자.
단백질은   소화, 흡수되어   혈중에 '알부민'과 ' 그로불린'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로불린'은  우리의  면역 체계에 쓰이게 되고 ,  보통 말하는 영양소로서의  단백질은  '알부민'이다.         즉,  우리가  음식을 통해  섭취한  경우와   수액을  통해  공급받은  경우의 차이는  음식물이  소화  흡수 과정을  더 거친다는 것  밖에 없다.      또  드물지만  알부민을  주사 했을 때, 갑자기  혈관  내용물의 부피가  늘어나  혈압도 오르고  심장 부전도  생길 수 있다.

위의 사실을  알고나면,  손쉽게 구해  맛있게  먹는  방법을  마다하고,   값 비싸고 . 복잡하고, 맛도  즐길 수 없을 뿐 더러 , 위험하기 까지 한  방법을  택할  이유가 없다.

필자가  수련 받던 병원에 '매직 탓치'(마술의 손) 라는 별명을  가지신  한국계  신장 내과  O교수가 계셨다.    이 분은  수분및  전해질  대사가  전문으로  특히   중환자 실에서  인기가 있었다.
해결  안되는  골치 아픈  문제에  자문을  구하면 , 튼튼한  이론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예측과  계산으로  수액의 농도,  종류 ,  공급량을  조정함으로  , 몇 일  사이에 환자의  상태를 극적으로  호전시켜  놓는 것이었다.          수액의  성분 들이   흔한 전해질이나  포도당인데도   쓰기에 따라  신비한 효과를 내는것을  보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같은 한국인임이  자랑스럽기  짝이 없었다.
수액은  이렇게 쓰이는 것이다.

모든  약품은    바로 쓰이면  약이고,  잘 못 쓰이면  독이며, 헛 되게 쓰이면  낭비다.
바로 쓰기 위해서는   바로  알아야 한다.   바로 알기 위해서는  물어야 한다.

항상  묻는데  주저하지 마시기  바란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 에서 -

Saturday, February 26, 2011

성가대 지휘자 인선에 대한 소고

오늘날  모든  개신교 교회에는  교인으로  구성된  성가대가 있고 , 모든 예배 순서에  직, 간접으로  참여하며 , 규모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그 교회의  핵심 중추를  이루고있다.
성가대는  대표,  행정 실무자인  총무,  지휘자와  올갠 , 피아노 반주자 (규모가 크면  오케스트라)가  그 골간을 이룬다.  이  중  대표와  행정 실무자는  교인이며, 지휘자, 반주자는  음악을 공부한  밖에서 초빙된  프로팻셔날 (전문인)이 대부분이다.
그 중,  중심이 되는것은  대표 (성가대장)와  지휘자이며 , 대표는 일 년 단위로 바뀌는데  반하여, 지휘자는 임기의  제한 없이  짧으면  몇 달,  길면 십년 이상  재직하기도 한다.
따라서,  오랫동안  능력있는   한 지휘자와  함께하는 성가대는  대개의 경우 , 여러모로  안정되어 있으며, 음악적으로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항상  수준급 이상의 성가를 들려줄 수 있게된다.
그래서 모든 교회는 그 교회의 사정에 맞고 ,  오래 재직하는   성가대  지휘자를  맞음으로서 ,핵심 조직인  성가대의   안정과   화목을  도모하고  , 나아가서는  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꾀함은  당연한 일이라 할것이다.
그런데,  성가대  지휘자를  청빙함에 있어서 ,  그 대상이나  절차에 대한   교회나 교인 다수의  통일된 의견이나  정론이 없고 , 그때그때   당하여 일을 처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 그러다보니  그 후  두고두고 골치를  썩이며  인선을  후회하게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인선 당시 어떻게 할 줄을 몰라  그렇게 된 수도 있겠고 ,  또는  어느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 약식으로  처리하다보니   잘 못되는 수도 있겠다.

여기에  이 글을  쓰는것은  모든  개개 교회의 특별한 사정들은 접어두고 ,  성가대 지휘자  영입에  고려해야할  공통적인  일반적  요건들을  거론 함으로써 ,  교회의  시행 착오를 최소화 하고, 인선의 물망에 오른  후보자들의  노력과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보자는  작은  뜻이 있다.

    성가대 지휘자 인선의  요건들은  다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 리더로서  개인적으로  갖추어야할  요건이다.
우선  성실해야한다.   시간이나  약속은  꼭 지켜야하며 , 모든 사람에게   '매사에 틀림없다'는 믿음을  주어야한다.
앞날에 대한  꿈이 있어야한다. 임기 응변 식으로 , 그날 그날 때우는 식으로일하면   곧  한계가 온다.
그 꿈을  실현할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능력이 있어야한다.
거기에다가, 교회의  갖가지  잡음과  소문을 참아 넘길 수 있는 참을성까지  겸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가장  어려운 일이다.

둘째로는  신앙적인  됨됨이다.  이것은   하나님 만이 아시는 ,  후보자의    신앙적인 성숙도를  말하는것이 아니다     후보자가  교회 구성원  다수와  신앙적 의견이  같거나  비슷한가를 얘기하는것이다.     예를 들어,   교회의 분위기가  이지적이고  냉철하며 , 고전적이고  전통 성가를  좋아한다면  ,  요즈음   팝 성가를  주로 해온 사람이거나  ' 크로스 오버' 분야에서  일한   사람은  당연히  적응이  힘들것이다.

셋째로,  음악적  능력이다.
우선  음악을  공부한  사람들의  수준은  천차 만별이고  , 전공도 다  다르다.
다시말해서,  성악 전공자와,  기악 전공자,  또 작곡을 한 사람과  드물게  지휘를 공부한 사람은  당연히  관점과  스타일이 다르다.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두느냐 하는것은,   먼저    교회가  결정해야한다.   한 예로  ,  능력있는  연주자가  반드시  훌륭한  지휘자는 아니다.       아시다시피, 스타 플레이어가  감독으로  성공하지 못 하는 경우와 같다.  일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음악적 능력에 대한  평가는   한번에  간단히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 평소에  후보자를  보아왔거나, 겪어 보았던  여러  전문인의 의견이  많은 도움이 된다.

여러 후보 중에서  한사람을 선택 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이있다.
한 사람씩  발표하는  경연대회 식으로  가며,   음악적  소양이 깊지않은  비 전문인들이   심사 위원 격으로  '  음악적 능력'을     판정하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도 않거니와 ,  결과적으로  전문인인  후보의 마음에  두고두고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것은  교회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넷째로, "모든 사람을  아우르고  이끄는  능력'이 되겠다.
원칙적으로  성가대는 ' 모든 하고 싶은 사람이 모인곳'이다.       지휘자의  임무는  이 각각의  지적 , 음악적, 신앙적 차이를 가진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서 ,  통일된  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지휘자의 존재 이유와  직결되는   가장  어렵고  중대한 일이다.

덧붙일 중요한 사실들이 있다.
음악적으로  , '간단한 성가'는 있어도   '쉬운 성가'는  없다.

역사적으로 ,  대원들을 처음부터  기본적인 ,체계적인  훈련을  함으로써  음악적인  수준을 높이겠다는  지휘자는   백이면 백  모두 실패했다.    성가대의 속성 상,   매일 해야하는  개인연습의  지속성과  집중성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가 대원은  바쁜 생업이 따로 있다.     일요일 하루를  집중해서 연습과  교육을 한다고 하더라도  보이는 성과는 미미하고,  대원들은 지친다.
따라서,  할 수있는 한도 내에서 "성가의 정신을 최대한  구현함"을  목표로 하는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해 가는중   기술적인   문제에 부딛치면   지휘자가   '음악적 목표 조정'과  '기술적 타협'을 통하여 해결 해야한다.   그리고  ' 그때의  최대한 능력 만큼'  성가를  부른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요즈음 말로 '노 하우(know-how)'가 하나 하나  쌓여서  음악적 수준 향상은  부수적으로  온다.   이를 '모자이크 이론  (mosaic theory)' 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 '벽돌 이론 (brick theory)'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객관적으로  체계적  훈련이 없는  교회 성가대가  , 종종  수준급 내지  마음을 울려주는  성가를 들려줌은  바로  이런 예 일것이다.
이것이  지휘자의  능력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대목이다.

대원 중에는 20년에서  길면 40년 이상,  성가대원 경력을 가지신분들도 많으며  이분들은 여러 지휘자들과   일 해본 경험이 있고,   다들  성가대  운영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지휘자는  이런  대원들에게 인간적으로,  음악적으로  신뢰를 받아야  성가대 안의 인화가 이루어진다.        이 또한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대강  인선의  요체가 되는  몇 가지를  말씀 드렸다.
여러분 중에는  "이렇게  까다로워서야  어디  적임자가있겠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당연히 있다.  그 자리는  그만큼  중요한 자리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끈기를 가지고  찾으면  적임자는  꼭 있다.    이는 역사가  말한다.

교회도  책임이 크다.  가끔  상식과 동 떨어진 결정을 하고,   "교회니까" 하고 지나가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있다.
결정 당사자가  책임져야 할 일을   하나님께 책임 전가하고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교회가 성가대  지휘자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더욱 존중해 주실 때 , 모든일은 순리대로일 것이며  , 더욱  하나님 뜻에  가까이가는  모두가 되리라고  믿는다.


                               Feb.26. 2011.

Friday, February 25, 2011

단식은 과연 '청소'인가?

독자 한 분 께서   " 우리의  위장  안을  청소하기  위하여  가끔  몇 날씩 단식하는것이  좋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으셨고  ,  다른  한 분  께서는  "숙변을  때때로  제거해야 한다는데요" 하고 물어 오셨다.   말씀 중  '숙변'이란  무엇인가고  물으니   장 안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찌꺼기 변을 얘기한다고  말씀하셨다.
결론 부터   말씀 드린다면 , 장 청소를 위한 단식은  필요 없으며   '숙변'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위에서  액체는 반 시간 가량 머물고 , 고형 음식은  죽 같이 되어서  서너 시간 후면  모두  소장으로  흘러 내려가고,  위는 비게된다.  그래서  배고픔을  느끼며 , 다음  끼니를  먹는다.
소장의 길이는  6미터  쯤 되는데  여기를 지나면서  영양분은  장 벽을 통해  흡수된다. 그리고  그 다음  2미터 쯤 되는  대장을 지나며  수분이  흡수되고 ,  그 나머지  찌꺼기는  직장에  모여 있다가  항문을  통해  대변으로   밖에 나간다.
우리 위장은  굳은 금속이나  프라스틱  파이프가 아니고 ,  말랑말랑하고  탄력있는 , 움직이며  시시각각  모양이 변하는  튜브다.   그리고  위장의  벽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도  항상  규칙적으로  한 방향 ,  즉  출구인  항문 쪽으로  내용물을  이동시키고있다.
옷에  흙탕물이  튀었다고 하자.  여러분은 우선  마르기를 기다린  후,  흙 묻은 부분의  천을  서로 비벼 문질러   흙 부스러기를  떨어져 나가게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항상  움직이고  있는  장  벽에  어떤  물체가  장 시간  붙어있는 것은   불가능 한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장 관 중에는  한적하고  인적 드문 골목길  같은 곳도  있을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있다.   그러나  우리의  장 관은  계속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항상  같은  모양의  길이 아니며 , 어떤 때는  큰 길도  되었다가   골목길도,  작은 길도  될 수있다.   그래서  통행없는  한적하고  막다른 길은  없다.     참  오묘하다.  ( 맹장, 계실 등 예외가 있으나  오늘  드리는 말씀과는  관계 없으니  그냉  지나가자.)
따라서  일컬어  '숙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 장 내용물은  음식물 만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액 , 담즙 , 장액,  췌장액등이 나와   계속해서  장 관 안을 흐른다.  한  예로  췌장에서 나오는  소화액만  하루에  2리터 ( 큰 됫박으로 하나)가량 된다.
만일  병적인  이유로  장 관이  막히거나  개복 수술 후  장 운동이  일시적으로  멈추면  , 위에서  말 한  소화액들은   더 내려가지 못하고  장 내에  고여   장 관 안의 압력이  높아지고 , 역류하여  위로 올라와  토하게된다.       이때에는  밖에서  튜브를 꽂아   고인만큼  기계를 통해  밖으로  뽑아내며,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하게하고   장 자체의  운동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생물학 적으로  보아  인간은  절대로 특별하거나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며    단지 하나의   '고등 동물'일 뿐이다.    물론  다른  동물과 달리  지능이 높고,  정신 세계를  가지며 , 깊은  사고를 하고,  고 차원적인  예술 활동,  영적인  신앙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얘기가  될지  모르겠으나 , 인간의  기본  구조나  살아가는  원리는   다른 동물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사람이  살아  움직이기 위하여  배고픔을  느끼고   하루  두 세번  먹는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리고  사람의  장은  뇌의  조정에 따라   항상  저절로  움직여  계속해서  밀어내며  '자체 청소'를  하고있다.
인간의  몸은  우리가   상상하는 정도의   '간단한  기계'가  아니다.
옛 부터  사람의  몸을   '소  우주'라고  일컬었듯이   "더 알수록  더 모를  존재"임을  항상  느끼고있다.
인간이  언제나  신  앞에  겸허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

Thursday, February 24, 2011

어느 할아버지의 푸념

어떤분이  세상을 하직하고  저승  문 앞에서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는데   앞에서  한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막 고함을 지르고 우는 바람에  사연을 들어 보아하니  다음과 같았다.
자기는  이승에서 마누라가  콜레스테롤이 높다고  '풀' (초) 만  먹여 , 100살까지  '장수'하고  부부가 ' 운 좋게'(?)  같이 저승에  왔는데 ,  저기  저승  문지기가 하는 말이 이곳은  비만, 고혈압 , 협심증 같은 성인병도  없고 , 소주에   갈비, 삼겹살을  암만 먹어도  걱정이 없는 곳이라고 하니,  여기를  진작 올 걸 , 세상에  이런 억울할 데가  어디있느냐고 , 이승에서 동물성 지방을  제한 한답시고
채식만 강요당했던  그 '고난'과  '핍박'의 세월을   어디서  '보상'받느냐고   소리 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위의 이야기는  물론 이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낸  우스개 소리다.   한데,  곰곰히 곱 씹어 볼 수록  여러모로  사정이  간단치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75세를 넘는 요즈음 , 노년기 사망 원인의 첫째가  동맥 경화에 의한  혈관 및  심장 질환이고 ,   50대 이상  셋 중 한사람은   고혈압 치료를 받는다.    따라서  심장과  혈관 질환  발생을  줄이고   그 발병 시기를  최대한  늦추어 보자는 의미에서  식이요법   즉, 음식 조심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은  날마다 늙어간다.   그리고  사람의  혈관도  같이  나이를 먹는다.
그래서  점점 딱딱해지고   유연성이  줄어드는것은   피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보태서  혈중 지방이 높아   혈관의 벽 안에  지방이 쌓여   더 굳어지고  좁아지면   위와 같은 혈관 질환의  발생 시기를   훨씬 앞 당기게 된다..
따라서 사람이 할 수 있는 한   그 문제를  예방해 보자는  뜻에서   동물성 지방 먹는것을  제한하자는 발상이 나왔고   혈관 안에  쌓이는   '포화 지방산'의 섭취를   줄이도록 했다.
이  포화지방산의 주류가   콜레스테롤이고   이것은  동물의 지방에만 있다.
1960년 이전   한국의  국민 소득이  100불도 안되던 시절,  고기가  없어서 못 먹던 시절에는  비만 , 고혈압 , 협심증 등은   환자의 숫자도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   운 좋아  일년에 한  두번   불고기를  맛 보던  그 때에는  저 지방 섭취를  일반에  강조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국민 소득이  이만여 불에  이르고    날마다 고기 먹는 것이   하나도 새삼스러울것 없는  요즈음  , 더구나  미국 땅에 와서  육식을 주로한 서양 음식을   항상 접하는  지금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과다한 콜레스테롤은  피 속에  녹아 있다가   혈관 속을 흐르며    혈관 안 벽에 붙어 쌓인디.
그 중  무게가 가벼운  '기름톨'이   더 잘 쌓인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얘기하는  '좋은  콜레스테롤' , '나쁜 콜레스테롤'인데  이 것은 의사가  투약 여부를 결정 할 때   판단에  도움이  되는  사실의  하나일 뿐,   표현 대로  '좋고'  '나쁜'것 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피 속에  녹아있는  콜레스테롤의 농도는 mg% 라는 단위로  표시하고  150mg% 에서      200mg% 까지를  정상 범위로  친다.   더 적거나  많으면  '비정상'이라는 얘기다.
전에는  250mg%까지  정상 범위에  포함되었으나, 30년 전 쯤  미  심장 학회는 권장 기준치를  더  내렸다.

그러면 ,  콜레스테롤이란   사람과 절대로  같이 지낼 수 없는   '불구 대천의  원수' 같은  존재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  피의 적혈구 벽을 만드는 주성분,  또 남 녀의 성 홀몬이나  담즙 ,  부신 피질  홀몬 성분의  기본 구조가  콜레스테롤이다.   즉,  우리 몸에   절대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간에서  반 정도가  합성되고,  나머지 반 정도가   우리가  높이고  낮출 수 있는  부분이다.
의사들은  혈 중 지방이 높은 분들에게  " 술을  끊고 ,동물성 지방 섭취를 제한하고,   운동을 하십시오" 라고 권하고  그래도 높은 약 70%가량의 분 들에게  투약을 시작한다.  그러나 부작용  없는 약은  없눈 법 , 간 기능과  근육 상태의 지속적인  체크가 필요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동맥 경화의  원인은  노화나  고 지방증 만이 아니라    꼭  먹어야 하는 다른 약물 일 수도있고,   담배 같은  기호품일 수도 있고    당뇨 같은 다른  병 일수도 있다.
사정이  그러하니,  식이요법 선택 여부의  최종  귀착점은  자신의 '인생 철학'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모든 병을 100% 예방 함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는데 까지하고  다음은 하늘에 맡기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면 ,  최선을 다 해 보자고   서로서로 격려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칼럼집 " 벽을 향한 소리"에서 -

Wednesday, February 23, 2011

"교회 음악에서의 세대 차"에 대한 해법

한 달 전,  이 난을 통하여  교회 음악에서의  세대차를  걱정하고   그  해법에 대해  여러분의 고견을  구했었다.    목사님들을  비롯한  여러분 께서  직접  뵙기도하고 ,전화도 주시고 , 제  개인 블로그(jinhoonchoemusicianmd.blogspot.com)를  통해서  의견들을 주셨는데  , 놀랍게도  내용은  거의  같았다.
우선, 고전 성가를  젊은이 들에게  더  들려 주고, 부르는 기회를 더욱  자주 마련해야 한다는  대 전제에는  모두 공감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예배를  계획하고  집전하는  목회자의  역활이었다.
"보다 많은 고전 성가가  불리우기 위해서는 , 우선 예배와 맞아야한다.   예배가  경건해야 한다. 이것은  목사님 몫이다."  (P 권사님)
"목사가  예배의  전통성을  알고, 인정하고,  부르는 성가에 대해서  더욱 고민하고  공부해야한다.( C  목사님)
"목사가  세태에  타협하지 말고 , 배운대로     예배의 본질과 , 성가의 역활과,  지금의 변화가  앞으로 미칠 영향에 대해서   역사의식을 가지고    신중하게 행동해야한다."( K 목사님)
"성가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의견 교환을 해야합니다."( 다른 K 목사님)

둘째로는   성가대 지휘자의  '자질' 문제였다.
"교인들은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면  , 무조건 성가에도  정통한 줄 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지 않다.    교회가 성가대  지휘자를  청빙할 때,  더욱  끈기를 가지고  찾아보면  ,음악적 소양을 갖추고,  고전 성가에도 정통하며,  ' 성가 관'이  뚜렷한  지휘자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피아노  앞에 앉은  피아니스트는 다  똑 같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개선 되어야 한다."  는  것이었다.

셋째로, 성가를  직접 부르는  성가대원에  관한것이었다.
"고전 성가를  익히고   부르는것은  물론  힘이들고,  금방 효과가 나지도 않는다. 끈기와 노력이
 필수적임을  각오하고,  지속적 연습을  감내하는 것은   대원  개개인이  해결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 '가스팰 송'은  설탕 같은 존재다.  밥은  끼니 마다  먹어야  산다.  그런데, 거기에  설탕이 없다면  이세상은  얼마나  삭막한가?"
"' 가스팰 송' 은   '집회'에서 하고,  고전 성가는 '예배'에서 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의견들도 있었다.

신기하리 만큼  문제의식은  같았고,  방법론에도  차이가 없었다.
그러면,   그 다음은?         구체적인  "실천"일것이다.
다시 한번  고견을 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Feb.23. 2011
뉴욕  한국 일보에 쓴  글입니다.

Tuesday, February 22, 2011

병 문안에 대한 의견

병약해 아파 누운 분이나  거동이 불편한  친지를 찾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것은   옆에서 보기에도 아름답고  마음 흐뭇한 일이다.   그러나  누구나 병석을 찾을 기회가  많지   않으므로 인하여 , 막상  당했을 때에  문병에도 최소한  지켜야할  의학적  도덕적 기준이 있음을   모르고 지났다가  낭패하는 수가있다.
오늘은 최소한 이것만은  지켜져야겠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를  얘기하려고 한다

우선  '찾아갈 시기'인가를  파악해야한다.
뇌졸중으로  절대 안정 중인 사람 , 수술 직후  혼미한  정신상태와  계속되는 통증으로 경황이 없는 사람,  산부인과 질환처럼  서로 얼굴 마주쳐서   '민망한'경우등은   당연히 서로   체면을 차릴만한  여유가 생길 때 까지   기다려야한다.    '면회 사절'이나   'Don't disturb'등의  팻말이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득부득 얼굴을  보겠다고 우기면   그 결과는 서로 어색하고  곤란할 뿐이다.
전화도  삼가야한다.   전화 벨 소리가  얼마나 신경을 건드리는지  당해 본 사람은 안다.

그리고 환자 분의  병이 전염성이 있는지를  사전에  알아보아야 한다.
격리 병실에 있는 분은  아주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면회를 안 하는것이 원칙이다.
꼭 만나야 한다면   병원의  엄격한 규칙에  잘 따라야한다.     즉 , 마스크를  하라면 하고  제한시간이 있다면  지켜야한다.

' 반대 격리'(reversed isolation) 라는 것도 있다.      이것은 저항력이 약해진 환자에게  방문 객이 병균을  옮길까 염려되어  격리하는것이다.      이 경우에도   대면하지 않는것이  좋다.

음식을 가지고 문병함은  피해야한다.   입원 환자는 병원의   엄격한 식이요법의  통제하에있다.즉 , 주는 만큼만 먹게 되어있다.    더구나   사간 음식을   그 자리에서   펴고   같이 먹는것은  더욱 안될일이다.

마음 약해진 환자 분에게   종교적인 믿음은   회복에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병실에서  찬송한다거나,  큰 소리로  모여 기도한다거나, 더욱  도가 지나쳐서   통성 기도하는것은   절대로  안된다.            이것은  최소한   인간 양식의  문제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지난 30여년 동안   옆의 환자나  병원 당국이 시끄럽다고  불평 하는  대상은   꼭 우리 한국 사람이었다.         낯  뜨거웠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문병객이  환자의  처지보다   자기 생각을  앞 세운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꽃을 들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다.     이것은  병실이나  병동 안의   환자나  스탶에게   꽃이나 꽃가루  알러지가  있을수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할 일 중 하나다.

문병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환자에게 자꾸 말 시키는 것 처럼 귀찮은 일은 없다.
많은 분 들에게   똑 같은  대답을 해야하는   환자의 입장을  생각해야한다.

외과 수술 환자의 경우, 환부를  노출하여  자주 처치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서로 마주보기가 아주 곤란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얘기를 해야겠다.
환자의 상태에 대하여   문외한이  아는 척하여  쓸데없는 혼란과 걱정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이것 처럼  무책임한 일은  없다.     선 무당이  사람 잡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될 일이다.
질문이 있으면  가족에게 하면 된다.    미국의 주치의는  법 적인 문제 때문에   직계 가족 외에는  아무에게나  절대로  환자의  상태를 얘기하지 않는다.
직접 의사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란다.

문병은  환자를 위한것이다.
방문하시기 전 , 이것을  적어도  열 번 쯤  생각하시기 바란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

Monday, February 21, 2011

닥터 이종성 장례에 드리는 조사

닥터 리,   종성이를 잘 아시는  여러 친지, 선배,  동료 여러분 앞에  제가  감히  조사를  하겠다고 섰습니다.
오늘은  격식을 갖춘 조사라기 보다는 ,  그 동안 제가 종성이와 더불어 지냈던    짧지 않은 세월을  돌이켜 보며 , 기억들 중에서  몇가지를 여러분과 같이 나누려합니다.

저희는  1964년 3월 2일,  청량리 역 앞 붉은 벽돌 집 , 서울대  의예과에서  처음  대면합니다.
그 때는  100명이 의예과에 입학하면   편의상  오 씨나  유 씨를  경계로  50명 씩  두 반으로  나뉩니다.     따라서, 이씨와 최씨인  저희는  2반으로  2년을 지내고  , 본과에 진입해 4년 ,  졸업 후 육군과 해군에서  군의관 3년을 각각  보내고 ,  뉴욕 시에서  인턴을 하며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정신 없이  수련을 마치고 , 브롱스에서  개업을 하며  또  만납니다.  그러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우선 그는   제가 만난 중  '최고의 외과 의사'였습니다.  요즘 말로  '끝 내주는  외과 의사' 였습니다.  지난 몇 년을  제외하고,  저와 같이 맡아  치료한 예가  600 케이스 가량됩니다.
이 모든 케이스를 그는 깨끗하고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단 한 케이스도  불평이 없었던 것이  그가 최고였음을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우 성실하고 진지한 전문인 이었습니다.
개업 초기에  그는  브롱스 , 퀸스 , 웨체스터의  9개 병원을 누비며   응급 케이스 들을  맡아 처리한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낮도  밤도 따로 없던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한번도 그가  불평하거나 , 얼굴 찡그리는 것을 보지 못 하였고, 한 밤중의 전화에도 언제나  기꺼이 응하고  명쾌한  해답을 주었습니다.

그는 솔선  수범하는  리더였습니다.  한 때  펠함 베이 병원에서  김용재,이종현,김광훈, 심영수, 오경균, 임안무 선배님들과  같이 일할때  , 항상 그 중심에서  우리 사이를 이어주고 , 사안 마다 앞장서서 해결 해 주던  사람은   종성이었습니다.    바로  다른 의사들로 부터  '코리안 마피아'라며  부러움과 시샘을  받았던   그 시절이었습니다.
후에 동창 69-70 모임을 활성화 시킨것도 ,  브롱스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의사들의 모임을 만들었던 사람도  그였습니다.

그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정착하지 못하던 저에게 '코압 시티'에  개업의 자리가 있다고  소개 한것도  그였고 , 제가  느즈막히  음악 학교에 입학할 때  축하와  따뜻한  격려를 보내 준것도 ,  또 그 후  "뉴욕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를   친구가 상임 지휘자라는  이유 하나로  지난  20년 동안 후원인 대표로  변함없이 도움준 것 , 저는 모두 잊지 못 합니다.

그리고 그는  남보다  두,세배 일을하며 , 분주히 지내던  그 시절에도 시간만 나면  집에 돌아가  사랑스거운  가족의 품에서  쉬며   재 충전하던 ,   최고의 남편이며  자상한 아버지였음을   함께 기억합니다.

저는 지금 종성이가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났음에  우선 안도합니다.
거기에다가, 더욱 감사드리게 됨은    학창 시절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가   지난 몇 달 동안  하나님 품에 돌아와 지내다가  편안한 마음으로  떠난 것입니다.

저는  아마도 지금 그가 , 여기서  그러했듯이 ,   천국에서도  할 일을  부지런히,  열심히 찾고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자,   그러면,
종성아,
다시 만날 때 까지   잠깐  작별하자꾸나.
안녕히-.

                    11.26. 2006.  진훈.


( 이 글은  삼가   급우, 42년 친우,  닥터   이종성의  장례 예배를 위해 썼습니다.)

흡연의 양면성

1970년 5월, 달성군  성서면 ㅇㅇ사단  신병 교육대 연병장,  필자는 한창 ' 엎드려 뻗쳐' 를 하는 중이었다. 초 여름의 땡 볕은  사정없이  내려 쪼이고, 땀 방울은  줄 지어 흘렀다.    얼굴과  등짝은  따갑다 못해  쓰라렸다.
조금 더 참을까, 아니면 다 내 팽개치고  구대장하고  한판 붙을까 , 한계 상황에  직면한 찰라,  기압은 끝났다.        먼지와 땀 범벅인 얼굴이  심상치 않았던지  그 지방  K대 출신  김군이  소매를 끌었다.   " 후보생이 우짜노 , 마,  참그라."   불붙인 꽁초를 내밀었다.         그 때   깊숙히 들여마신  '화랑 담배'  연기의 그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신기하게도 서너 모금  뿜고 나니  마음의 평정이 오는 것이었다. (이 때의 구대장  M 소위 하고는  훈련 끝나기 전날 밤  막걸리 한 잔으로 화해했다.)

집 안에 담배 피는 분이 없던  때문이었는지  , 흡연에  별 관심없이  중, 고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 시절도  덤덤하게  지난 셈이다.  더구나 본과 1학년 해부학 시간에  배당된   실습용 '카데바'가
공교롭게도   생전  애연가 였던지   가슴을 열었을 때   먹물에 담근  스폰지 같던 폐와  검은 굴뚝 안 같은 기도를 보고 꽤 충격을 받았다.    그랬는데 ,  졸업 후  입대하여   훈련소에서  무상 배급하는 화랑 담배로 시작하여    가끔  하루 서너 개비씩  태우는 경지에 이르렀고 ,  그때  미국에 왔다.

온 지  일주일  만에  병원에서 수련을 시작 했는데, 이 때는  낮도 없고   밤도 따로 없었다
남는 시간에는 졸기에 바빴고 , 담배를 태우려면  끽연실 까지 가야했다.  이러다 보니 , 담배와는  자연히 멀어졌고  관심도  끊어졌다.   돌이켜 보면  참  큰  행운이었고  지금도  감사한다.

하루는  시니어 레지덴트 때  응급실  당직을 하는데  , 회진 때  가끔 우리를 가르치던  D 박사가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휠 체어에  실려왔다.     그는  심장 내과 의사였고 ,   손에는 필터 없는  '고전 담배'가  항상 들려있다시피 했던   애연가였다.   병명은  '심근 경색'이었고  얼마 후 저 세상으로  갔다.

요즈음에도 오랜 흡연으로  폐기종이 되어,  앉아있어도  숨이 가빠하는 여러 분을 흔히 접한다.
이 경지에 이르면   금연한다 해도   현재의 상태에 그칠 뿐,   옛날로 돌아가는것은 불가능하다.
즉,   근본적   회복이  안 되는 것이다.
참 안타깝기 짝이없는 일이고, 앞에  앉아있는 나까지  덩달아 가슴이  답답해 지는것 같다.
초기에  담배를  서구에 소개할 때  중대한 역할을 한  젠 니코나   월터 로리는  , 그 당시   이  중대한 문제는  당연히  몰랐을 터이다.

지금은 의학적으로  흡연의  부정적인 면이  공개적으로 알려지고 강조듸어  흡연자는 어디서나 괄세를 받는다.  의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인생사는 그렇게  간단치 만은 아니하다.    훈련소 시절  , 화랑담배 연기의    효험을 인상 깊게 경험한  필자에게는   흡연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에는  마음 한 구석에   담배에 대한  연민의  정이  짙게   남아있다.      금연 한 다음   또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결국,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것 같다.
담배는  건강에  해롭다.           특히  심장, 폐 기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필히  먼저  아시기 바란다.      여기까지가  주위 사람과  의사가  할 수있는 일이다.
충분히  알고  난  다음에도  꼭 피워야겠다면  , 본인이  후회없는 결정을  하시라.   이것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  흡연으로   잃는것이   얻는것 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 크다는것이다.    또  나중에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 이미  때는  늦었다는 것이다.

통상적인  의사의  '겁 주기'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란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Sunday, February 20, 2011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아침에 일어나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그날의  예정을 점검하고   세부 시간 계흭을 짜는것은  지난 30년 동안 변함 없는  일과 중의 하나다.  출진을  앞 둔  마지막 점검 같은 것이다.

커피는  먼  옛날 에티오피아의  '아비시니아'  고원 지대에서   가축 들이  한 나무의 잎사귀를  먹은 후  잠을 안 자고   밤 새 우는 바람에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고 전하며 ,
그 나무 이름은   커피나무 ,즉  Coffee arabica 라는  학명으로  불리운다.
처음에는  술도 담그고  약품으로도 쓰이다가 음료로 쓰였다는  기록은  1200년 경에 보이며 ,  이 때 아라비아에   전해지고   1500년 경에는  터키에  나타난다.  그리고  1600년 경  이태리를 거쳐  유럽에 퍼진것으로  되어있다.    커피의 어원은  아라비아어인   '카와(qahwah)'로   알려져 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 병동 마다  사무실 마다  향기로운  커피가  언제나 끓고있어  시시 때때로 골라서 마실 수 있었고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특별히  '에스프레소'와   '헤이즐 넛' 향기가  좋았는데,  이들은  커피 콩  볶는  과정 중에 특별한  향료를  더 첨가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커피의 주성분은  카페인이다.    카페인은  중추 신경계를 자극하여  사람을  '깨어있게'하며,  위산의  분비도  늘리고 , 소변의  양도  많아진다.  심장의 박동도  빠르게하며,  일시적으로  혈압을  높이는  약리 작용도  있다.  구체적인 예로  식 후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소화를 돕고 ,식곤증으로부터  깨어있게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음식과  같이 마시면  카페인의  흡수가  느려져서  심장이나 혈압에  주는  영향도  거의없다.
그러나  드물게   공복에 커피를  진하게  자주 마시면    위염 ,나아가서는 위 궤양의 원인도 될 수있다.      갑자기 많은 양의 카페인이 흡수되어   혈중 농도가  높아지면   멍 한 기분이  되기도 하고  손이  떨리기도 하며,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 부정맥이  생기기도 한다.

한 고혈압을  가지신  환자 분께서 " 하루에  커피를  몇 잔 까지 마실 수 있습니까?"  물으셨다.
이 질문에는   커피잔의 크기, 커피의 농도 , 인스탄트냐 아니냐 , 공복이냐  식 후이냐에 따라 흡수되는 카페인의 양이  당연히  다르므로 , 그저  "식 후에  한 모금 맛 보시는 정도면  무난하리라  생각합니다." 라고    모호하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협심증 환자나  심근 경색을 앓은 분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때문에,  또  아스피린 계통이나  소염제 계통의  약을 드시는 분들은   궤양이나  내출혈  위험 때문에   피하시는것이  현명하다.      잠  못 주무시는 분은  물론 마셔서는 안된다.

커피 향기와 관련지어   필자에게  잊을 수 없는 곳이 하나있다.    1960년대 후반, 70년대 초의   서울  동숭동  "학림" 다방이다.    저녁  늦게  피곤한 몸으로   무거운 책 가방을 들고  교문을  나서면  걸어  2분 쯤  되는 곳에  '학림'이 있다.     삐걱 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서   2층  판자문을  열고 들어서면,  짙은  커피 향기 , 담배 연기와 함께    경쾌한 모짜르트,  웅장하고  심각한  베토벤이   온 몸을 감싸고  밀려들었다.    그곳은  앞 집  문리대,  옆 집  미대,  의대,   그리고  을지로  6가  음대의    팔팔한  '띄는' 친구들로   항상  북적거렸다.
호주머니가 비어  그냥 앉아 있어도   차 마시라던  채근도 없던  마음 편한 곳이었다.   날마다  반 시간 쯤  이 곳에 들러   앉아있다  집에 가야만    그날  일과를  다 끝낸  만족함이 있었다.

얼마전  한국에 갔을 때  일부러  시간을 내어  "학림'을  찾아간 적이있다.   그런데 ,  삐걱이던 나무 계단만  비슷할 뿐 ,  너무 변해서  옛날의  모습이나 정취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코소보난민이   폭격에 맞아  폐허가 된 집 터에 돌아와  느끼는   허망함과  섭섭함 ,  그리고  울분이   이런 것일 것이라고  미루어 생각함은   지나친  비약일까?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Saturday, February 19, 2011

'종합 진단'의 허상

 한 40대 여자분이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자기는 3개월 전  직장에서  '종합 진단'을 받고 다 괜찮다고 했었는데 , 계속해서  목이 마르고  소변을 자주 보게되어   다시  의사를  찾게 되었노라 하셨다.
진찰, 검사 결과  ' 갑상선 기능 항진증 ' 이었고  이 분께서는  '종합 진단'을  무성의하게  엉터리로 했음이 틀림 없다고 대단히  화를 냈다.
한 30대 후반  젊은  남자분께서   해마다 하는  '종합 진단'에서는  당뇨가 있다고  하였고  얼마 전  생명 보험을  들 때  혈당 검사는  '정상'이라는  결과를   통보 받았는데  과연 어느 결과를 믿어야 하나   물어 오셨다.
우리 말에는  꼭  들어 맞는  아름다운 형용사 , 부사가  많아서 표현하기도 쉽고    듣는 사람이 아주 쉽게 이해할 수있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영어로는  'blue'이지만  , 우리 말은  '파랗다' ,'퍼렇다', '푸르스름 하다',  '푸르다', ' 푸릇푸릇 하다', ' 푸르딩딩 하다', ' 시퍼렇다' 등등  매우 다양하다.
그 반면에  아주  거창하고  애매 모호한 표현도  많아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게 하여   전혀 사실과  동떨어지게 이해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위의  '종합진단'이라는 말이  그 중 하나다.
우선 듣기에  이것은  "모든 부분을  검사하고  종합적인 결과를  말 해주는 것 " 처럼 들린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간단한  신체 검사와  당뇨, 간 기능 , 신장 기능 검사 몇 가지,  빈혈 여부 ,통상적인  소변 검사,   나이 드신 분 에게는  대변에 혈액이 섞여있나 여부,   심전도,   그리고
가슴  X-레이를 합해    '종합'이라고   얘기 하는것 같다.     따라서,  이 '종합 진단'에서   이상이 발견되는  경우는 수 많은  병 중   흔한  몇 가지 병에 국한된다.    그리고, 먼젓번  예의   남자 분 처럼  경한   당뇨병의 경우,  열 시간 쯤의  공복에  피를 뽑으면  정상치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일단 한번 높다고  얘기 들으신 적이  있는 분은 다음 단계로   당 부하 검사( GTT)나,
헤모그로빈 A1C 라는  검사를 통해  간단히 확인할 수있다.     또한  우리의 간은   용량이 커서 
어느만큼 나빠지지 않으면  간 거능 검사의 수치는 정상인 경우도  많다.     즉,  간 암의 초기에  보통의  간 기능 검사 만으로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처음 예에서   말씀 드린  여자분은  갑상선 기능 검사가   '종합 진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을 몰라서  오해가 생긴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위의  '종합 진단'이란  필요 없는 것인가?
아니다.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훨씬  낫다.
성인에게  흔하고, 심해지기 까지  자각 증상이  거의 없는  고혈압 , 당뇨 ,직장암 , 신 부전 ,폐암 ,협심증등이   뜻 밖에  발견되는 수도 많다.
단지  '종합 진단'이리는 용어를   우리 몸의  '모든 질환'을  검사한다고    "확대 해석"하는    중대한 오해는  없어야 한다.

그러면  질병을 가능한 한  일찍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모든 질병 진단의  단초가 되는 것은  우선  자기자신의 느낌이다.    하찮은 일 이라도   무엇이  보통 때와 다르게  지속되는 것을  , 즉   이상을 , 제일 먼저  감지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만이   할 수있다.
또 ,  경고 신호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닐 것이라고 우겨서   중요한 시기를  놓지는 수도 많다.
여러분의 주치의는 항상 전화선 저쪽 편에  대기 중이다.
언제나   대화의 문을 열어 놓는 것은   문제를  일찍  발견하고   보다 쉽게 해결할 수있는   첩경임을  생각하시기 바란다.

그런데  병이 중하게  진전될 때 까지   아무런  자각 증상이 없을 때는  어떡하나?
이것은 ' 인간 능력  한계를 넘는' ,  '어쩔수 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일 이라고    얘기할 수 밖에 없겠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Friday, February 18, 2011

레퀴엠 ( Requiem; 진혼곡 )에 대한 이해

15년 전 쯤 개봉된  '아마데우스'(Amadues) 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짤트의  생애를 그린 영화입니다.
시작되면 , 음울하고  스산한 분위기의   교향곡 25번   g 단조가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검은 망토를 걸친  한 사나이가   저벅저벅 걸어 ,  좁은 골목길을 구비구비 돌아,  모짤트 집 문을  쿵쿵 두드립니다.  그리고  어리둥절하는  모짤트에게  짧게  '진혼곡'  작곡을  부탁하고 사라집니다.
감성이 날카로운 모짤트는   갑자기 일을 당해,  작곡을 의뢰 받은 기쁨은 잠시 접어두고,   이것을   하늘이  자기에게  보내는 계시 , 즉  저 세상으로  갈 준비를 하라는  암시로 받아들여,  걱정하고  고민했다고 후일  사가들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5개월 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모짤트 사후 , 그 검은 망토의 사나이는  발젝 스투파  공작 집의  집사였고 , 자기 주인을 위해 작곡을 의뢰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왜 그 때  그가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식의  고압적인  자세로   모짤트를  겁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진혼곡 (Requiem)의 본래 이름은  ' missa prodefunctis'  ,즉,  '돌아가신 분을 위한 미사곡' 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 떠나신 분의 혼을 위로하고   하나님께 부탁드리는 곡입니다.
그러나 첫 곡의 가사 " Requiem  aternam  donaeis  Domine "" 오 주여  안식을  주소서 " 중  첫 단어를 따서  'Requiem'(편안함,  안식) 이라고 불렀고,   계속 이렇게 불리우다가  공식 이름이 되고맙니다.
진혼곡은 정해진 형식 없이 지내오다가 ,1545년 교황 피우스 5세  때 , 트렌트 종교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정통 형식을 정합니다.  진혼 미사곡은 바로  예배 진행 순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introitus(첫 시작 곡)으로 시작하여 ,kyrie(불쌍히 여기소서) ,gradual(양식 주소서 ),sequence  (다음 순서, 이 곡의 주인공에 관한   , 이 미사에 관한  ,그대로 지날 수 없는 , 빼 놓을 수 없는  특별한 
사연 )로 이어진 후,      offeratory (헌금)  ,  Sanctus and Benedictus  (축복 하소서),  Agnus Dei  (신의 어린 양) , communion(성찬)으로 끝 납니다.
거기에다가  매장하는 순서가 있으면   Responsory ("Libera me Domine' ; 주여, 자유케 하옵소서")라는 곡이 추가됩니다.

18세기 이후  모짤트,  벨리오즈,  베르디 들은  sequence  부분에  더욱 극적, 음악적인  비중을 두
어  Dies Ires (심판의 날), Tuba Mirim (나팔 소리 울려라),   Lacrimosa  (눈물 흘리네),   recodare (기억 하소서) 등 여러 곡으로 나누어 ,  이부분이 길어지고, 진혼곡의 음악적 중추가 됩니다. 
그리고  ,베르디는  진혼곡을  음악만 분리하여   음악 회장에서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그 후에   19세기 말의 브라암스,  20세기에 들어와 스트라빈스키, 벤자민 브리튼 들은   기독교 적인 색채를 배제하고,  전사자등  특정인이나 집단을 위한  진혼곡을 씁니다.

이 글의 첫 머리에  말씀 드렸던 영화  '아마데우스'의  마지막 부분에는 , 모짤트가 죽기 바로 전   침대에 기대어   '진혼곡' 멜로디를 노래하고  ,반주 코드를  쥐어 짜듯이 힘들게 말하면 , 그를 시샘하던   당대의 알아주던 작곡가  살리에리가  오선지에  한 소절, 한 소절  열심히 받아쓰는  처절한 장면이 니옵니다.
저희 성가대는 이번  사순절과 부활절에 이 모짤트 진혼곡 중  몇 곡을 골라 부르게 됩니다.

이제부터  여러 교우께서  진혼곡을 들으시며 , 더 큰 감동과  은혜가 같이 하실 때,  이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  외람되고  소박한  희망을 가져 봅니다.

                        Mar.2001

아스토리아 교회 교우 님들 께-

Thursday, February 17, 2011

소문만복래. ( 웃으면 복이 와요)

의과 대학 3학년 때로 기억된다.  시험 준비를 하느라 급한 김에 밤을 새우고, 시간이 없어 멍- 한  머리로  학교 까지 택시를 잡아탔다.   타자마자  운전기사 아저씨가 켜 놓은 라디오 방송이 들려왔다.     마침 당대를 주름잡던  코메디언 구봉서씨가  송해씨와 대담으로 아침 음악 프로를  진행하고 있었다.'
구봉서씨가 잘문했다.  "자, 수수께끼 문제를 냅니다.  오른 쪽 '볼기짝' 꼭 닮은것이  무엇입니까?"
해답이 뭐지?     나도 모르게  질문에 빨려 들었는데  도대체 생각 나는 것이 없다.   질문 중 '볼기짝'에  힘을 주었기 때문에  열심히 '볼기짝'  닮은것만 찾아 보는데  송해씨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  대답이 없다.
노래 한 곡이 끝나 봉서씨가 다시 나왔다.
"대답 준비 되셨나요?",  "모르겠는데요."   "어허,  그  빤 한 걸 모르다니,  머리 좀  쓰시오.  쯧쯧-"
잠간  뜸을  들인 다음,    "예,  그것은  왼쪽 '볼기짝' 입니다." 
순간 터져 나오는 폭소를 참을 수  없었다.   대담은 계속된다.
"자고로 사람이란  머리가 좋이야 해,  암 ,그렇고 말고.    이번에는  꼭  맞히시오."   계속해서 살살 약을 올린다.         " 자,  이번에는 더 쉬운걸로 하지,  잘 들으시오.   '따르르르'하다가, ' 또르르르'하다가,  '두르르'하다가,  '따따따'하다가,  '뺑그르르'하는것이  무엇입니까?"        이번에는 더욱 캄캄 절벽이다.  송해씨도 계속 침묵- .
"몰라?  이정도도 모르면 곤란한데?  사람은 우선 영리하고 봐야 해."  속수무책 당하는  송해씨,
항복하는 수 밖에- .    "모르겠는데요?"    "몰라?  그럼  항복이지요?"   머뭇머뭇- , 결국  막다른  골목---  "예,  항복합니다."      "네,  그것은  '수수께끼 문제' 라는 것입니다."     와하하하,  또 한번  폭소,  한참 운전기사 양반과 함께 웃다보니  머리 속은 어느새 맑게 개어있었다.

위와같이   웃고나면 마음이 후련하고  기분 좋은 즐거운 웃음도있고,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나오는  마음 편해지는 웃음도 있으나,  그 반대로  마음 속과는 달리 억지로 웃어야하는 경우도 있다.
의학적으로 애기해서 웃음을  관장하는 곳은  우리의 대뇌이다. 우선 눈 ,코, 귀등의  감각 기관을 통하여 느낀 정보가  대뇌의 '림빅 시스템' 이라는 곳에 전달되어   감정을 움직임과  동시에   대뇌 피질에 알려  , 그  상태와 환경에서   웃을것인가  말 것인가 ,  또 어떤 강도로  웃을것인가를  정하여  자율 신경계에 명령을 내리면   , 자율 신경은 명령받은 그대로 근육을 움직여  표정을 짓고 ,  소리내어 웃게된다.   이렇게 설명하면 꽤 시간이 걸리는 듯 하나 ,이과정은  한 순간에  이루어진다.
다시말해서, 즐겁고 기분 좋은 웃음은  감정 중추 제의를  대뇌피질이  '무수정 통과' 시키는것으로,   또  억지 웃음은  감정 중추 건의를  대뇌 피질이 상반되다시피 대폭 수정,   명령한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즉,  잘 웃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개개인이  자극을 받아 들이는 강도와   대뇌 피질이 개개인의  '기준'에 의거하여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달려있는것이다.

요즈음 질병의 치료,예방과 ,  기쁜 웃음과   관련된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있다.  예를들어, 수술 후  코메디 프로그램을   일정 시간 시청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 보다  같은 정도로 회복하는데  20% 정도 시간이 덜 걸린다거나,   많이 자주  웃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 보다  면역 기능이 강화되어  질병 감염율이  낮아진다거나  하는 보고 등이다.
그러나, 회복이나  감염에는 개개인의 여러 가지  다른 차이도 감안해야 하는만큼   꼭 웃음만이 원인이라고  말 하기는  힘든 일이고,   필자가 보기에  회복 정도의  확실한 기준을 정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환자 자신이 낙천적이고  자주 웃거나  , 관심을  다른데로 돌릴만한 여유를 가지면   질병으로 받는 고통도 덜게되고,   거기에다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마음  놓게하고   안도하게하는   더욱 큰 효과가있다.

어디서나  밝은 웃음은 사람을 살 맛 나게한다.
그러면 보다 자주, 즐겁고  후련하고 기분 좋게 웃으려면  그 방법이 무엇일까?
한 마디로 무엇을 보고 느낄 때 즐거워야하고  그 사실을 기쁘게 느껴야한다.    즉,  눈 ,코, 귀 등 감각 기관의  보고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이며   대뇌 피질의  해석이  항상 긍정적 방향 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되겠다.   즉,  자신의  '인생관'  내지  '인생 철학'이  항상 즐겁게 웃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겠다.
그런데 이 세상이  어디 그렇게  말랑말랑 한가?
날 마다 전투에 임하는 마음으로 사는데 ,  어려운 일이다.
다 안다.  다 알지만--.

펑펑 눈 물을 쏟아본 지도  옛날 일이고 ,
 맘 놓고 후련하게  웃어본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Wednesday, February 16, 2011

식중독에 대한 소고

어느 날 밤, 마악 잠들려고 하는데 가까운 친지 한분께서 전화를 하셨다.  한국에서 오신 손님이 비행장에 마중 나오신 여러분과 식당에서  회 덥밥을 잘 들고 나오시다가, 갑자기 배가 아프고 심하게 토해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치료 받고  , 몇 시간 후 진정되어 퇴원 했는데 , 이 것이 과연 식당의 잘 못이냐, 아니면 우리 음식 때문이 아니라고 우기는 식당의 항변에도 이유가 있느냐고 물으셨다.
요즈음 심심치 않게, 갑자기 설사하고 토하며 배가  '틀어 올리듯이' 아파,  몇 시간 씩 고생하는 분들을 만난다.
식중독이란 세균, 바이러스, 원충등의 미생물에 오염되어 변질, 부패된 음식을 먹었을 때 나타나는 병이다.    이 것은 음식에 대한  과민 반응으로 나타나는  '음식 알러지'와는  확연히 구분해야 한다.
음식을 처리, 조리하는 과정에서 미생물 (이하 편의상 '세균'으로 칭함) 에 오염되면 세균은 번식하고, 우리는 이것을 '음식이 변한다' 고 얘기하며, 먹는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변해 있으면  안 먹게 되니 더 이상 문제가 없다.    그런데 부패의 정도가 먹는 사람이 모를 정도로 적거나 , 다른 진한 양념 때문에 느끼지 못하고 그냥 먹었다면 우리 몸의 방어 체재가 작동을 시작한다.
우선, 위에는 PH 3 정도의 강력한 위산이 있어  어지간한 균은 여기서 죽는다,    그러나 균의  양이 처리 할 수 없을 만큼 많거나 ,  종류가 강산에도 죽지 않을 만큼 '독종'이면
균의 독소 (톡신; Toxin) 가 위장벽을 자극하고 심한 경우, 점막층을 파괴하여  헐게 한다.
따라서 우리 몸으로서는 말썽의 근원인 이들을 되도록 빨리 없애거나  내쫒아야겠는데, 방법상 위 쪽으로 내보내면 '토하는 것'이고  아래 쪽으로 내보낸면 '설사'가 된다.    이 때 밖에서 보면 심한 복통과 수돗 물 같은 설사 , 계속적인 구토가 나타나는 것이다.
오염된 음식을 먹고 증상이  나타나는 시간은 미생물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다.  즉, 포도상구균, 연쇄상 구균은 대개 한 두시간 이내이며, 변종 대장균은 24 시간에서 72시간까지 , 브루셀라 균은 반나절에서 하루 가량이다.
신문에서 심심치 않게 보는 생선, 조개에 오염된 비브리오 균은 짧으면 여섯 시간 ,길게는 이틀 후 증상이 나타나는 수도있다.  또  계란 표면에 오염되는 살모넬라 균은 24 시간에서 48시간 가량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식중독은 내보내는 과정 , 즉 설사, 복통, 구토를 한바탕 치르고 나면 차츰 점차 회복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토하지만 않으면 전해질이 섞인 수분 즉, 국물이나 '진저 엘'  같은 카페인 없는 소다를 나간 만큼 계속 조금씩 마시도록 하여 탈수를 방지하고 전해질의 평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증상이 심하면 수액을 정맥주사를 통하여 공급하며. 균의 종류에 따라 다른 항생제를 투여하게 된다,
십여년 전 , 한국에서 어린이 급식용 빵이 오염되어 한 어린이가 사망한 적이 있었다.  아마 심한 증상에 대처한 수분과 전해질 공급이 늦었든지, 아니면 이미 신장에 이상이 왔는데  수액의 선택이 잘 못 되었든지 하는 이유 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치료만 일찍 시작하면 식중독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없다.  무서운 비브리오 패혈증은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며,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별로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설사를 멈춘답시고,  지사제를 드시는 분이  계신데 빨리 내보내야 될 세균을 오랫동안 몸 안에 둘 이유도 없거니와, 오히려 해로운 일이다.
결론지어,  식 중독은  신선한 재료를 깨끗하게 조리 함으로써  예방함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필자는 생선회와 초밥을 즐기는데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이다.    무슨 이유로든지 그 맛을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러나 항상 당할 각오는 하고 먹는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세수 , 다다익선

대학 2학년, 첫 미생물 학 실습 시간이었다고 기억된다.  담당  J 교수께서 다섯 명 씩 그룹으로 나눈 다음 , 그 날의 실험 방법을 설명하고, 한 마디 덧 붙이셨다.
"오늘의 실험 결과를 여러분 일생 동안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선 다섯 명이 각각 자기 손가락을 배양 접시에  찍었다. 다음에  한 사람은  맹물로 간단히,   다음 사람은  맹물로 5분,  그  다음 사람은 비누 묻혀 간단히,    그 다음 사람은 비누 묻혀 3분,  다른 사람은 비누로 5분 동안 손을 씻게 한 후, 각각 다른 배양 접시에  손가락을 찍게하고 일 주일 동안 배양한 후 열어보도록 했다.
예정된 일 주일 후 ,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다섯명이 손 씻기전 찍은 배양 접시들은  균주(colony)로 차고 넘쳤다.   '맹물,간단'  접시와   '비누,간단' 접시는  드문 드문 균주가 자라있었다.    그런데  '맹물,5분' '비누,3분'  '비누, 5분' 접시에는   눈을 씻고 보아도 균주는 찾을 수 없었다.   아하!    이때야 J 교수님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손 씻는 것이  이처럼 중요하다는 것을  난생 처음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최초로 박테리아(세균)를  발견한사람은 1600년대 후반의 '안톤  폰  레웬훅'이다.   그는 현미경을 가지고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보다가  이상한  작은것들을  발견하고 '균(germ)'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는 이들이 무엇이며 ,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 때는 모든 질병이나 물질이  부패하는것은   '신의 저주' 때문에   '자연 발생'하는 것으로  믿었다.
지금은 웃지만  페텐코프라는 당시의 저명한 학자는 이  '자연 발생설'을  증명한답시고 콜레라 균을 자신이 먹어 보인적도있다.     파스퇴에르, 코호등의 학자가 실험으로 증명하고,  우여 곡절 끝에 '세균 원인설'이  받아들여진 것은 1800년대에 들어와서다.
세균을 접하지 않거나,  죽임으로써    질병의  전파를 방지하거나  치료가 가능하다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생각의 변화가 왔고 , 따라서 '소독'의 개념도 생기게된다.
처음으로  수술장과 기구를 소독하고,  '무균 수술'의  방법을 쓰기 시작한것은  1800년대  말  미국의 외과 의사  윌리암 홀스테드다.    먼 옛날이 아니다.  지금부터  100여년 전이다.
그 전에는  수술은 성공했으나 합병증으로 죽는것이 태반이었다.  따라서 큰 수술 후에는 의례히 죽는 것으로 알았으며  하늘의 뜻으로 알고  체념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균 수술과  소독의 개념이 도입된 후로  사망율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1940년대  항생제들이 개발되어 쓰이기 시작하면서  옛 날에는 엄두도 못 내던 큰 수술도 쉽게한다.

위의 역사적 사실들을 일별 해 보면, 지난 100년 동안에  이 세상은 얼마나 변했는지 간단히 알 수있다.
그러면  독자 여러분 께서는  " 그 시대의 의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한다며  폼을 잡았나 " 물으실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대 나름대로   아는만큼  최선을 다 했을 것이며, 다음 세대를 위해 연구에 힘 쓴 결과   오늘의 우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아마 백년 후  사람들이  오늘날을  돌이켜 보아도   이것은 마찬가지일 줄 안다.

손 씻는  얘기를 하다가  너무 많이 나간것 같다.    우리가 모르는 중   손이  우리 몸의 여기저기 병균을 옮겨주며,  건네 받아 계속해서 남에게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미안스럽고,  끔찍하고, 겁 나는 일이다.
손 씻는 일은 하찮은 것  같지만,  앞의 실험 결과 처럼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있다.

항상 기회 있을 때 마다  자주 손을 씻으시기 바란다.
그것도   가능하면  비누를 묻혀,   흐르는 물에,   박박 씻으시기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 당부 한 가지,     매 번  씻으신 후  꼭 로션을 발라   손의  피부를  보호하시기 바란다.     이것은  세면대에  비누와 로션이   항상  나란히  자리하고 있도록  하시면  된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Tuesday, February 15, 2011

Antonio Vivaldi 와 "Gloria"에 대한 이해

시건방진 얘기가 되겠으나  , 1960년대 초, 제가 고등 학교 학생 이었을 때의  희망 사항 중 하나가 ,20년 후 조용한 휴일 아침 , 초록 빛 바깥 풍경이 보이는  거실에 앉아  커피 잔을 앞에 놓고, 비발디 '사계 ' 중  '겨울'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종종 비발디의 작품을 듣고 연주 했으나   그의 성가들은  미국에 와서  Magnificat과    Gloria 를
들으며 처음 접했고, 그후 어느날 Ricardo  Muti 가 지휘하는  Gloria 를 듣고  "바로크 음악을 이렇게도 할 수있구나"하는 강한 감동을 받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시다시피 , 비발디는  바로크 시대 (1600-1750) 음악가들 중 이태리를 대표하는 간판 격인 작곡가입니다. 그러나  그는 몇 가지 평범하지 않은 사실로  후세 사람들에게  더욱 각별히 기억됩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1678년  이태리 베니스에서 출생하여  (JS Bach 보다 10년 쯤 앞 섭니다), 174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일생을 마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1675년 생이라는 설도 있고 사망 년도에도 이론이 많습니다.

그는 성당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에게서   어릴 적 부터  음악 교육을 받고 자랐고 ,나이 25세 때 사제 서품을 받고 신부가 됩니다. 그러니 "건강상 이유" ( 기록에는 만성 병;chronic disease 이라고만 되어있슴) 로 성당을 떠났고 , 고아원에서  어린 소녀 들에게 바이얼린과 합주를 가르치며  작곡과 연주를 했고,  여러곳을  '여행' 했으며,  비엔나에서 나이 60이 넘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500 여곡의 작품을 남깁니다.  이는 굉장히 많은 수의 작품 이며 ,   상당히 분주한 활동의 결과로 생각 됩니다.
그러니 당시에 크게 인정 받지 못한 까닭인지,  아니면 여러 곳을 돌아 다녀서인지 알 수 없으나, 그의 행적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더욱 이상스럽고 중요한 사실은, 그의  작품들이 그의   사망 후 , 즉 1700년 중반 이후 연주된 기록을 전혀 찾아볼 수없으며,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완전히 사라졌다가, 200년 후  미국의 바이얼리니스트 올가 럿지,  이태리 작곡가 알프레도 카젤라 같은 사람들에 의해 악보들이 발견되고, 연주되며,  또 그의 음악에 심취한 분 들이 늘어나고 ,  한 때  이태리 국수주의의 도움도 받아  연구와 악보 발굴이 더욱  활발해 져서 , 오늘 날 약 500여 곡이 세상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많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거장으로 여겨지는 비발디가 ,또 그의  음악이 200년 동안  완전히 잊혀졌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느누구도 자신있는 대답을 못 합니다.   여러 가정, 학설도 앞 뒤가 잘  안 맞습니다.

미루어 짐작컨데, 당대에 재능은 있으나 별로 주목받지 못한  한 음악가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곳을 떠돌며   가끔 지방의 부호나 토호 ,영주들을 위해 곡을 써 주고  적은 사례를 받아 살았었고, 돈을 더 벌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곡을 더 자주 써야만 했으며  , 그 곡을 받은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로  보배로운 가치를 몰라  악보를 아무곳에나 쳐 박아 두었는데,  후일 그 귀중함을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개인의 유물을 정리하는 중에,  혹은 대학 도서관 같은 곳에서 서류 뭉치에 섞여 있다가 발견 된 것으로 사료됩니다.

지금도 적지않은 숫자의 음악 평론가 들이 " 그의 기악곡 들은 다 똑 같다"고 혹평하는것과 연결지어 보면 ,위의 설명은 꽤 설득력을 갖습니다.   그러나,1727년  오스트리아 황제  카알 6세의 후원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고  , JS  Bach가  비발디 합주곡 중 열 곡을  하프시코드와  올갠 곡으로 옮겨 놓은것을  보면, 그 시대에 꽤 인정 받았던것 같기도합니다.

지금까지 나와있는 500여곡 중에는  기악곡이 제일 많고,  다음이 오페라,  성가 순입니다.
성가에는  미사곡 , 크레도, 모텟등이 있고, 여기서 말씀 드릴 '그로리아'는  형식으로 보아  '통상 미사곡'의 일부분 같다는 주장도 있으나,    12곡, 연주시간 30분, 그리고 구성을  감안하면 순수 연주용으로 쓴 곡이라고 생각 됩니다.   ( 통상 미사곡은  대개 5곡으로  미사의 순서에 엄격히 따릅니다.)

이  Gloria in D (RV. 589 ;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는   12곡으로 되어 있고, 여성 보이스만  중창 ,독창으로 쓰인 특징이 있으며,   독창자가 부르고  회중이 응답하는 '레스폰소리알' 형식의 곡도  보입니다.

한 가지 덧 붙일 얘기가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그 시절의 연주 스타일이나 기법에 충실하게  연주해야 하느냐, 그럴 필요가 없느냐 하는것은  오랫 동안  논난이 되어 왔습니다.
언제든지  연주자가   곡을 연주 할 때는   그 작품이 쓰여진  때의  역사적 배경과  동기와  주위환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 거기에서  더 나아가  연주자는 자신의 주장을 더해 그 작품을  '재 창조' 해야 합니다.  이는  연주자의  의무임과  동시에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 제 주장이 너무 센가요?)

교우 여러분,
이번  저희 성가대의  Gloria  전곡 연주를   지켜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Jan. 2005.

이 글은  2005년  그레이스 교회  성가대와  교우들께 쓴 글입니다.

Monday, February 14, 2011

잊지 못하는 두 식탁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에 입대한   1970년 봄의 일이다.
입대한 곳은   육군 군의학교,  이어서    달성 군 ㅇㅇ 사단등지에서 3개월의 군사 훈련이 예정 되어 있었다.      대구  효목동 의무기지 사령부 집합은 오전 7시,  새벽 같이 일어나  이름 없는   해장국 집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군 부대에   모여서,   복잡한 절차를 거치다 보니   점심 때가 되었고,     식당에는  플라스틱 식판에 담은   밥과 국이  기다리고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래도  장교 후보생의  첫 날이랍시고 , 크게  대접하여   '차려준 것'이었다.

그런데, 첫 숫갈을 막 입에 넣은 순간, 더 이상의  동작을 진행할 수 없었다.   밥에는 역한 경유 냄새가  섞여있었고,   배추 국물은  완전히  '쓴 맛'이었다.
평소에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 '먹성'하나는 타고났다" 던 자신감이 , '군대 밥'이라는 '강적'을  만나  간단히,  완전히,  철저하게   깨지는 순간이었다.    입에 들어 간 밥은  뱉을 수 없어  그냥 삼켰으나,  그 날 점심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저녁 때 . 또  이튿날 아침,  배 고픈 김에 왕성한  식욕으로  재 도전했으나   두 숟갈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삼,사 일이 지나자   차츰 경유 냄새에는 익숙해지기 시작했는데도,   배추국  콩나물 국의 '쓴맛 ' 에는  계속 '속수무책'으로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일 주일 쯤 지났을까 ,   하루는 옆에 앉은  김 군이 호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며  무엇을 꺼내더니   자기의 배추국에 뿌린 다음    내 국에도  그 가루를   쓱쓱   뿌렸다.  그리고는  "묵어 바라,   맛이 개얀타." 했다.
그런데,  세상에  이게 웬 일인가,   반신 반의하며  한 숟갈  떠 넣은 배추국이 , 그  쓴 맛은 다 어디가고 ,  구수한 해장국으로  변해있었다.         어어- ?
알고  보니  밖에서 ' 밀 수입'한   '미원 가루'를 뿌린 것이었다.   '미원' ,'아지노모도',   화학명' 그루타민산 소다'의  위력을 난생 처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다음 부터는 군대 밥을 못먹어 고생한 적은 없고,  오히려  그 구수한 해장국밥 맛을 내내 즐기다가 제대했다.  
           
나중에  궁리 끝에 알게 되었지만 ,   쓴 맛의 원인은  간 맞추려고  쓰는 소금과,   배추 잎의 '잎 파랑이'(엽록소) 였다.     집에서는  배추국을 끓일 때,   일단 배추를 한 번 끓여   엽록소를  어느만큼  제거하고 난  다음,  다시 끓인다.    해장국 ,우거지국도 마찬가지다.    이 것이 쓴 맛을 없애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군 식당에서는 두 번 끓일 시간도 ,   간장을 사용 할 여유도 없다.  따라서 군대 특유의 쓴 맛나는  콩나물 국,  배추국이 된다.
그러나   비방  '그루타민산 소다'의   구수한 맛은  이 쓴 맛을  단 숨에  없앨 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고등 학교  3학년, 1963년 이었을것이다.
필자는 "코알라 클럽'이라는 영어 회화 모임에 속 해있었다.   이 모임은 우리 학교와  옆 동네  E여고 학생 들로 이루어 져 있었는데,   회원은  각 학교   한 학년에  여덟 사람 쯤 됐다.    호주인 고문을 모시고,   회합과 행사의 진행을  모두 영어로 했다.    훗 날 군 시절   사령관 영어  통역을 지내고,  또  미국에 와서  말 하는데  큰 고생 없었던 것은   이 써클 활동의 도움이 컸다.

그런데 같은 학년 여자 회원중,  H 양이 청소년 적십자사 대표로  일본에 회의 차 가게 되었다.
그 시절,  외국에 나가는 것은  어렵고 ,드물고, 큰 사건이었다.      그래서  같은 학년 남 학생 회원 일동이  주머니 돈을 모아   당시  흔하지 않던 '옥스포드' 영영 사전을 선물했다.
그러자,  H 양의 어머님께서  집에서 송별회를 겸한  저녁을 내겠다고 하셔서,  남자 회원 여덟이  그 집을 방문했다.
저녁 식탁에는 밥과 김치 만 차려져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 대야 만큼 큼직한 접시에   하나 그득  담긴   구운 소 갈비가 들어왔다.     그 날  아마  그 큰 접시가   족히 열 번 가량은  들락 날락 한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서,  디저트는   다른 큰 접시에  가득 담긴   '삼강 하드 아이스크림 바'였다.
이렇게   간단하고,  세련되고,  맛 있고 , 멋 있고,  인상적인 식탁은  그  전에는 물론,  그로 부터 40년이 훨씬 지난 오늘까지 거의  대한 적이 없다.
그 시절  '틴 에이저'  우리들의 마음을   훤히 꿰 뚫어 아시던  H 양의 어머님을  이후  새삼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뵙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잊을 수 없는  위의  두 식탁은 , 이후 필자로 하여금 ,   하나는  막막한 문제에 부딛쳤을 때  빠져나가는  요령을  차근차근  생각하도록 했고,    다른  하나는 항상 보다 멋있고 세련됨을  더욱 좋아하고,  부러워하고 ,   존경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Mar.2005.

봄 철의 불청객 - 알러지성 비염

요새는 재채기하기에 바쁘다.
미국에 온지 5년 쯤 지나서, 화창한 봄이었는데 날마다 코가 막히고, 눈 코가 가렵고 붉게 충혈하더니 점점 심해져서 밤 잠을 못 잘 정도가 되었다.
알러지성 비염이 드디어 나에게도 오는구나 생각하고 앞으로 해마다 두어달 동안 연중 행사로 치러야 함을 깨달으며 새로운 각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에서 일컬어 '시민권 병'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인데, 아마 미국에 와 시민권 받는 시기와 발병 시기가 비슷하게 맞아 가는 때문인 것 같다.
알러지란 쉽게 말해서 '과민 반응' 이다.  즉, 개개인 사람의 몸이 접하는 어떤 특정 물질에 대하여 그냥그데로 지나도 될 법한데 싫어하는 정도가 지나쳐서(?) 선택적으로 '적대적'(hostile)인 반응을 하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우리의 몸이 "바깥으로 부터의 다른 물질과" 접할 때 이 다른 물질을 '항원'이라 부르며, 이 항원에 우리 몸이 정상적으로 반응하여 그에 대항하는 물질을 만들어 낼 때, 이 것을 '항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예방 주사를 맞는 원리도 이것이다.  다시 말해서 적을 접해 본 적이 있고, 대응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시체말로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서 유사시에 훨씬 싸우기가 쉬워진다는 얘기가 되겠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항체가 특정한 물질에 필요 이상으로 반응함으로써 점막이 충혈하고, 붓고, 가렵고, 재채기, 기침도 하고, 심한 경우 갑자기 기도가 좁아져 숨을 못 쉬게 되거나 혈압이 내려 가서 생명이 위협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왜 특정한 물질에만 지나치게 민감하며, 그 또한 개개인에 따라 모두 다른가?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까지 어느 누구도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다.  즉, 확실히 모른다,
따라서 치료는 근본 원인을 없애는 것이 아니고 증상을 호전 시키는 대중 요법들이다. 오늘은 알러지성 비염 치료만을 얘기하자. 
우선, 항원과 상종을 안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시도 숨을 안 쉬면 못 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공기 중의 항원, 즉 꽃 가루, 풀 가루, 먼지등을 완전 차단함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차선책으로 '최소화' 하는 것이다.'  문을 꼭 닫고, 실내에서 지내거나 먼지를 덜 내거나, 밖에서 들어 올 때는 씻고 옷을 갈아 입는 등이다. 
다음으로 우리 몸의 항원에 대한 반응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양손을 마주쳐야 손뼉 소리가 난다.  이방법은 이 때 한 손을 묶어 놓음으로써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선, 점막이 반응하여 부을 때 '마스트 세포' (Mast Cell) 에서 히스타민이 대량 나오는 것을 막거나 줄이는 '항 히스타민제' 가 있다.  알레그라, 클라리틴등이 여기 속한다.  졸립고 힘 없는 부작용이 있었는데 요즈음 많이 개선 되었다.  그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약품에 '크로모린' 계통의 약도 있다.
그리고 극적인 효과가 있는 반면 부작용이 큰 부신피질 제재는 의사가 마지막으로 쓰는 '비장의 무기'다. 이는 증상을 없애는 대신, 우리 몸의 저항력도 없앤다.
그러나 워낙 효과가 좋아 일부에서 겁 없이 남용되는 바람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왕왕 있다.
다음은 '탈 감작 요법'이 있다.  이 것은 과민 반응하는 항원 아주 작은 양을 계속해서 투여해서, 차츰 익숙해지도록 하여 과민 반응을 없애는 방법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우리가 날마다 접하는 그 많은 항원을 투여 하는데 수적 한계가 있고, 많은 시간이 걸리며, 3년이 지나도 1/3 정도에만 효과가 있어서 별로 인기가 없다. 
가장 효과 있고 부작용이 적은 약은 코에 뿜는 부신 피질 국소 제재다.  이는 거의 혈 중에 흡수되지 않고, 점막에서만 작용하며 반응을 차단한다.  다행히  위의 방법들을 알맞게 섞어 사용하면 큰 고통 없이 지낼 수 있다.
말기 암 환자, 말기 에이즈 환자는 알러지가 없다.  왜? 반응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러지가 있음은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
허나, 이렇게 생각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Sunday, February 13, 2011

'미사곡'에 대한 기본적 이해

(이 글은 2001년 아스토리아 교회 창립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앞두고 쓴 글입니다.)

'미사곡' (라틴어; missa    불어 ; messe    독일어;messe   스페인어; misa  영어; mass)이란 , 카톨릭과 일부 신교에서 쓰이는  예배 음악을 뜻 하며, 또 다른 의미로는 에배의식 그 자체를 지칭합니다.     한국어로 말 할 때는 '미사'와 '미사곡'이  확연히 구별 되지만, 위와 같은 외국어 들에서는   같은 단어로 쓰이기 때문에  혼동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미사'의 어원은  가톨릭의 예배가 끝 나고,  집전한 신부께서 "성도 여러분,  이제 집에 돌아가셔도 좋습니다"하는 뜻의 라틴어  "ite missa est."에서 유래하였고,  이것이 줄어  가운데 만 남고,  그러다 보니  missa라는 단어가 예배 의식 자체를 뜻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정설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미사곡은 예배가 평상 예배냐,아니면  특별한 이유와 계기가 있는  크리스마스, 부활절 같은 예배이냐에 따라  보통때 쓰이는 평상 미사곡( ordinary mass)과 , 특별한 때 쓰이는 고유 미사곡 ( 대미사곡 ;proper mass)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일반적으로  '평상 미사곡'을  그냥 '미사곡'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평상 미사곡은  다섯 곡으로 구성됩니다.
첫 곡 kyrie(불쌍히 여기소서)  ,둘째곡 gloria (영광 있으라)  ,셋째곡 credo (사도 신경) ,넷째 곡sanctus,benedictus (거룩 하시다, 축복 하소서)  , 그리고 마지막 곡  Agnus Dei  (신의 어린 양)  입니다.

다시 얘기해서,  자기를 낮추는 "저는 불쌍한 죄인입니다" 로  시작하여,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사도 신경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다음, 주의 축복을 빌고,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우리 세상 죄를  사하여 주심을 감사하며 끝 나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초대 교회에서 부터  7-8세기 까지는 예배 음악은  회중과 성가대가 함께 부르다가  그레고리 교황이 성가 학교를 만들어 ' 전문교회 음악인'을  교육 하기 시작한 후 부터는 ' 전문 사역자'만 부르게 됩니다.     이 당시의 미사곡은  그레고리 성가를 비롯한  단성부 음악으로
테너 중심입니다. (이 때는 여자 성가 사역자가 없습니다).
그 후 화성과 대위법이 발전 함에 따라,1364년  프랑스 노틀 담 사원의  길롬 드 마쇼( Guillome de Machaut ) 신부가 처음 4성부 미사곡을 작곡하여 쓰게 되며, 이 형식은 후대에도 계속 발전하여 ,15세기에는  듀페이( Dufay)신부에 의하여 순환 미사곡(cyclic mass) 형식이 나타납니다.

미사곡의 이름은 , 처음에는 사람 이름이나 조성( key)에 따르다가,그 후에는 첫 악장의 조에 따라 명명하는 방법이 보편화 됩니다.

16세기 들어와, 악기와 적곡 기법이더욱 발전하고 세속적인 멜로디와 형식이 미사곡에 도입되기 시작하자, 가톨릭 주교 회의는 여기에 제동을 걸고 , 경건하고 아름답게 흐르는  팔레스트리나( palestrina )의 미사곡을 예로 들며, 이곡 처럼 작곡하라고  강권한 적도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팔레스트리나의  곡 들은  우리를 깊은 명상의 세계로 인도하며, 큰 감동을 줍니다.     하지만  세월의 도도한 흐름과 , 음악의 발전  변화는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것이어서   17 세기가 되자  루터  교는 평상 미사곡을  kyrie 와   gloria, 두 곡으로 줄이기도 하고,   JS.Bach   는 합창 4성부는 물론이고, 4성부 독창과  올갠, 오케스트라를 포함한 2시간이 넘는 대 미사곡들을  작곡해 내 눟습니다.     이 곡 들은 이미 종교적인 감동 만을 넘어서서, 비 종교인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19세기를 거쳐 근세에  들어와, 벨리오즈( Berlioz), 베르디( Verdi),브라암스( Brahams )를 비롯하여, 폴랭(Paulanc), 고다이(Kodaly), 힌데밑(Hindemith )에 이르는 동안,  연 이어 새로운 미사곡, 진혼곡들이  나오면서 이미   옛 날의 전통 형식 미사곡들은  사라진지 오래이며,  새로운 형태의 미사곡들이 작곡되고, 쓰여지고,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합니다.


이번 교회 창립  25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저회 성가대가   2관 편성 풀 오케스트라와 함께 부르는 모짜르트의 ' 대관식 미사곡'(K# 317)을  기대 하시기 바랍니다.



                                                   2001.

Saturday, February 12, 2011

그레고리 성가 (Gregorian Chant)에 대한 소고

교회 음악을 살펴 보면 ,'그레고리 성가' 만큼 긴 세월 동안  변함 없이 교회 음악으로 쓰여 왔고 , 지금도 듣는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느끼게하며, 현대의 음악에도 큰 영향을 준 예는 찾기 힘 듭니다. 사방이 스테인 그라스로 싸인 교회당에서, 높은 천정과 첨탑 안을 구비구비 돌아 메아리쳐 들려오는 그 단순하고  성스러운 노래는 신비함이 느껴지기 앞서서 경외감이 들게합니다

구약 시대의 음악은 확실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단편적으로 성서에 쓰여있는대로  창세기 4장에 나오는 '라멕의 노래',  출애급기 15장의 '홍해의 찬가' 등을보아, 기악과 성악 그리고 무용이 합 해진 것이었다고 여겨지며,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대 합창단에 대한 기록도 보입니다.
그 이후  바빌론 포로 시절을 거쳐, 이스라엘에 돌아와  B.C. 517년 경에는 회당에서 독창자와 회중이  대창적으로 낭송했다는 기록은 있는데 , 기악과 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것으로  보아서  이 때의 교회 음악은 이미 성악 위주로 변한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초대 교회 시절을 거쳐  A.D.313년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 된후에도  예배 음악은 변함없이 성악만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때 기독교가 로마의 국력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감에 따라, 지금 처럼 교통과 통신
수단이 발달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각 지방 마다 다른 예배양식이 나타나게 됩니다.
유감 스럽게도  이 시절은 구전에만 의존하고 , 기보법이 없어 악보를 남기지 못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6세기 말 '그레고리오 1세'(A.D.590-604 재위) 가 교황으로 즉위합니다. 이분은  교황이  되자  지방마다 다른 로마교회의 예배 의식과  음악을  개혁, 통일합니다.
교회음악을부르기 쉽게 발전 시키고, 체계화하며, '직업  교회음악인'을 '가창 학교(Schola Cantorium)'를 설립하여 양성하며, 새로운 성가도 만들게합니다.
이때의 형식으로  후에 쓰여진 성가도  역시  '그레고리 성가'로 불리우며  ,'노이마(neuma)보'라는 기보법으로 후세에 전해지고, 16세기에  종교 개혁이 되어 다양한 예배 음악이 나올 때 까지
거의 1000년 동안 교회음악의  중추 역활을 하게됩니다.

그레고리 성가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가사는 대부분 시편에서 따온 것이며,그 외에 Sanctus(거룩하다),Benedictus(축복 하소서), Agnus Dei(신의 어린 양) ,Kyrie(불쌍히 여기소서)등이 계속 반복 되기도합니다.
멜로디는 단성부로서, 한 음에 가사의 한 음절이 걸리기도 하고,혹은 여러 음에 한 음절이 나누어 걸리기도 합니다.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곳에서는한 음절이 ,높은 음  그리고 여러개 음에 나누어 걸림으로 고조된 감정을 나타냅니다.
(가끔  음표 위에  '가로 줄'이 보이는데, 이것은 그 만큼 길게 노래하라는 것읻니다.)

곡의 진행은 조성(key)이 있지 않고,모드(mode)라는 독특한 방법이 대신 쓰입니다.
즉, 첫 음에 따라,대개 3도 잔행을 하며, 또  쉽게 얘기해서   오늘날 피아노의 흰 건반 음 만을 따라  멜로디가 이어집니다.

그레고리 성가 중  가장 알 수 없는것은 '리듬'입니다.   악보에 박자에 대한 언급은  아무데도 없으며,세로줄도 없고, 오직 노랫말 끊는 곳에만  오선 위에  ' 짧은 세로 줄'로  표시가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 전적으로 독창자의 해석과 재량에 따라 리듬이  선택된 것 같으며,쉽게 얘기해서  "제한 없이 아주 자유스러웠다"고  할 수 있겠슴니다.

노래 부르는 형식은  독창자가 부르다가,  합창단이나  다른 독창자가  함께  다른 멜로디를 부르기도 하고,  같은 선율을  반복하기도합니다.
바로 이것이   구약 시대  유태인의  ' 음악적 시편창'과  같은 점이며,  이에 따라  일부 학자 들은  '그레고리성가'가  유태적 전통을 계승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자동차 타고 산천 경개 구경하듯이   간단히 말씀 드렸습니다.
우선  '타워 레코드'에  가셔서   CD한 장 사시고,  들으시면서  ,이 글을 다시 읽으시면 , 이해도 빠르고 ,거기에다가  성가의 진한 감동도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Mar.2000.
                                                                                                                                                                        
이 글은  아스토리아 교회  회지 "생명 샘 이야기'를 위해 썼습니다

Friday, February 11, 2011

제가 생각하는 "예배 성가"

다섯 살 때 한반도 북쪽에서는 전투가 한창 일 때,  어머님 손에 이끌려 교회 유치부에 처음 등록 한 이래로,  55년 여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대학 시절, 군 복무 시절 교회에 가지 않던 시절도 있었으나 , 제 자신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더우기 35년 전  미국에 와서  수련 받던  감리교 병원의  병원 교회에서 올갠 주자로 일 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매주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으며,  수련이 끝난 후에는  한인교회 예배 반주자로,음악 대학 에서 공부 한 후에는 성가대 지휘자,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수 많은 성가곡에 접하고 연주하는 일이 일상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는 저에게 분에 넘치는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항상 감사 드리고있습니다.

오늘은 이 짧지 않은 세월을 지내오며 제 나름대로 성가에 대해 생각해 온 몇 가지 의견을 감히  말씀 드리려 합니다.   먼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여기서 드리는 말씀은  예배 중 부르는 "예배 성가"에 국한함을 명확히 합니다.
아시다시피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 있어서  뜻이 같거나 비슷한 분 들이 모여서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다음의 제 의견들은  '옳고' '그름'을 규정 함이  아니며, 제가 '좋아하고' '추구해온' 성가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한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 더욱 타당하고 적합한 표현일 것입니다.

첫째로,에배 성가의 목적과 내용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어야합니다.  여기에 부합하지 아니하면 아무리 아름답고 음악적으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연주 될 곳이 따로 있습니다.
 
둘째로, 듣는 회중이그 성가에 공감할 수 있어야합니다.   가사는 회중의 마음을 대변 내지 비슷하게 표현한 내용이어야 할 것이며, 곡도 마음을 움직이거나  적어도  듣는이가 거부감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즉  요즈음 말로 가사 내용이 튀거나 불협화음 같은 익숙하지 않은  실험적인 기법을 사용함으로서 회중의 마음에 부담을 주는 음악이 아니라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셋째로,듣는 사람의 뇌리에  오랬동안  남아  하나님과, 예수님과, 자신을 ,  두고두고 생각 해 볼 수있는 성가라야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꽤 오랫 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그 기억과 감동이 한순간 이상 자속하지 못 하는 즉흥적인 곡이라면  ,이는 예배 성가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 했다고 할 수있습니다.

넷째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예배 의식의 분위기는 '경건함'입니다.    미루어 생각하건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와 대화를 나누며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뜻에서일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성가도 '경건'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현대적인 악기와 작곡 기법을 사용한 곡일 경우, 대다수 회중이  지금까지 지녀온 생각을 기준으로 판단하여 , 그 성가의 리듬이나  형식이나 분위기가 경건성과  거리가 았는 다른 것을 연상 시킨다면, 이는 꼭 회중 만의 절못이 아닙이다.   선곡 한 사람도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리듬이 맘보, 트위스트, 차차차  같은 경우,  또  국악 성가 중 리듬이 귀신을 부를 때 쓰이기도 하는 굿거리 장단인 경우가 여기에 해당 할 것 입니다.

다섯째로, 연주자가 하나님께  드린다는 긴장된 마음 , 경외심을 가지고 성가를 연주한다는 진지함을 ,회중이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음악에 문외한 일지라도 이 진지성은  누구나 쉽게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연주자는 당연히 , 독창자 이건  ,성가대 이건, 오케스트라 이건 ,독주자 이건 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 합니다.   우선 예배를 집전하는 목회자와의 의견 교환을 통해  선곡하는 과정부터 시작하여  ,성가대나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곡을  음표 , 쉼표 단위까지 나누고,  거기에 음가(value of notes)를 부여하고,   이를 다시 모아 맞추는 과정을  반복,   리허살을  시작 할 때는 이미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며 ,  연습 과정 중에도 " 적당히' 지냄 없이  최선을 다하고 , 예배 중 순서에서도  후회없는 전력 투구를  한다면 당연히 듣는 회중이 이 진지함을  같이  느끼게 됩니다.
적당히 슬쩍  지나가는 트릭은  한번쯤  통할지 모르나, 두 번은 결코  안 통합니다.
또 한가지, 연주자가 성가를 연주 할 때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 끼어 들면, 예를  들어,  멋을 부린다거나  개인적인 예배 이외의  다른 생각을 한다면  그  연주는  꼭  실패합니다.
그리고 오랫 동안  마음 속에 아픈 상처가 남습니다.

여섯째로, 예배 성가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는 하나,동시에 회중도 듣습니다. 따라서 회중이진지한 태도로 듣고 받아 들여야 드디어 성가의 소임이 완수 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중은   예배 성가가 불리워 지고, 연주되기 까지의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함께  느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연주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같이 드린다는 생각으로,진지하게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가의 연주에 있어서  문외한이  가벼운 생각으로 간섭하고, 때로는 방해함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즉, 예배 중 성가의 역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지고, 끝 맺어 지는 데는 회중의 역활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는것입니다.

갈수록 성가를 대하는 것이 어려워 잡니다.   두려운 생각이 깊어 집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으신지  계속 생각하며 , 헤아리고, 여쭈어 보는것 만이   오직 제가 할 수있는 일 임을  항상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May.18.2007.

리오 브라보 (Rio Bravo)

"해는 서쪽으로 지고, 소들은 시냇가로 내려 가네.  새들도 둥지에 붉은 날개를 접으니, 이제 카우보이는 꿈나라에 갈 시간이군."
딘 마틴이 콧 소리 섞인 저음, 휘감기는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계속 된다.
"저 계곡에 서린 보라빛 안개를 보게나, 거기가 바로 내가 섬브레로 (챙 넓은 맥시코 풍 모자)와 장총, 사랑하는 말과 더불어 오래 같이 지낼 곳이지."황혼에 물든 텍사스 벌판의 한가한 저녁 풍경이 벤조, 하모니카 소리와 어울려 눈 앞에 환히 보인다.
서부극  '리오 브라보' 에서 딘 마틴은 알콜 중독으로 손이 떨려 제 구실을 못 하는 총잽이로, 보안관 존 웨인의 보좌관이다.  그러다가 심기 일전, 몇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금주를 시도, '멕시칸 장송곡'을 들으며 드디어 술을 끊고, 기폭 장치 없는 다이나마이트를 공중에 던지고 클레이 경기하듯 이를 권총으로 쏘아 악당들 머리 위에서 폭발 시키는 묘기로 무법자들을 제압한다는 줄거리다.

역사상 언제부터 알콜이 인류에 의해 만들어 지고 마시게 되었나 하는 것은 분명치 않다. 일설에 의하면 벌통의 꿀에 빗물이 스며 들어 발효한 것을 원시인이 마신 것이 시초 라고 하니, 거의 인류 역사와 시작을 같이 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있는 곳에는 술이 있었고, 모든 크고 작은 사건에는 주연 및 조연급 소도구로 꼭 끼어 들기 마련이었음은 잘 아시는 바다. 그러니 이에 따르는 폐해도 만만치 않아 지금 알콜 중독은 근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큰 사회 문제의 하나다.
화학적으로 알콜은 탄소, 산소, 수소로만 이루어진 화합물로, '기름' 종류로 분류된다,  영양학적으로는 일 그램 당 71 칼로리를 내는 '고 칼로리 식품'이다.  그러나 그 안에
비타민, 미네랄 같은 영양소가 없고, 열량도 일 시에 방출되기 때문에 식품으로는 쓸모가 없다.  다만, 그 약리 작용으로 중추 신경을 억제하여 나른해 진다거나 뇌의 '억제, 조정중추'를 또 억제함으로써 일시적으로 해방감이나 자신감등을 맛 볼 수 있는 희한한 물질이다.
그러나 억제함이 과하면 호흡, 순환 중추가 마비되어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다.  또 알콜은 위 액의 분비를 늘려 위궤양을 일으키고, 간에서 분해되기 때문에 다량을 지속적으로 마실 때 지방간, 간 경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신 신경계에 오는 폐해로 중독성이 있어 술 마시는 것이 습관화 되고, 술 없이는 모든 사고나 사람의 기능을 못 하게 되며 나아가서는 항상 취해 있어서 인간의 의무와 권리를 포기하고 비참한 종말을 맞는다.
자주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가지신 분이 "저는 술을 전혀 마실 수 없나요?" 물으신다.  대답은 "맥박이 빨라지거나 얼굴이 붉어 지지 않을 정도로 증상을 못 느낄 만큼 드십시오." 이다.
(알콜 혈중 농도 0.08mg% 이상이면 법률상 자동차 운전을 못하며, 개인 차가 있으나, 0.01mg% 이상이면 자신이 변화를 느낀다고 되어 있다.)
이 대답은 간단히 다시 말해 "드시지 마십시오" 이다.
이 것은 합병증 없는 간 경화 환자에게도 마찬 가지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약을 드시는 분에게는 알콜이 그 약의 효과를 필요 이상 증대 시킬 수도 있고 감소 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진정제, 수면제, 감기약의 주성분인 항 히스타민제가 전자에 속하고, 신장을 통해서 배출되는 페니실린 계통의 항생제는 소변의 양이 증가하기 때문에 혈중 농도가 줄어 들어 약효가 줄어 든다.
오래된 얘기지만 하루 한 잔의 포도주는 혈관 계통 질환 즉, 협심증이나 뇌졸증 등을
줄인다는 일부 학계의 발표가 있었다.  술꾼 중에는 이 학설을 조자룡이 헌 칼 쓰듯 인용하며, 술 마시는 것을 합리화 시키시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이 것은 공인되지 않는 일부의 주장일 뿐이며, 혈관계 질환에 아스피린을 권하는 의사는 있지만 술 마시라는 의사는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아무튼 1920년 대 미국의 '국가 금주령' 처럼 인간의 본성에 역행하는 극단의 조치도 없어야 겠지만, 술은 되도록 마시지 않음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 "에서-

Thursday, February 10, 2011

성가대원 여러분 께

   ( 이 글은 2005년 8월  뉴 저지 그레이스 감리 교회 성가대 단합 대회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성가대 단합 대회에 즈음하여-

제가 이곳 그레이스 교회 성가대에 와서 함께 일 하기 시작한지 어언 3년 8개월이 지났습니다. 
처음 뵙고 나서 ,저와 여러분이 바로 시작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또 장기적,  궁극적인 목표 들은 무엇이어야 할지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그 후  기회있을 때 마다 성가란  어떤 것이어야 하며,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며,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 하는것을  단편적으로 멀씀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중간 보고 삼아  자금 느끼는 소회의 일단을 말씀드리고저 합니다.

처음  제가 이것만은 여러분께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 했던 것은  '노래는 자신의 표현이며,의사 전달의 수단임과 동시에 마음을 전하는 도구의 하나라는 것'을  새삼스럽지만  일 깨워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즉,악보를 따라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부르는 노래가 "성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하여 대원들이 곡을 외우다시피   하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거기에 통일된 표현에 의한  '프레이징'(phrasing)이   당연히 따라야 했습니다.         따라서, 연습량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늘어날 수 밖에 없었고, 음악 전공자가 아닌  교회 성가대원이라는  근본적인 제한을 가진 여러분을 인정 사정없이  오직 재촉하고 독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 성가대는 다양한 배경을 가지신 분 들이 모인 곳입니다.
제가 할 일 중 하나는 이 다른 목소리들을 모아  한 소리를 내도록하는 것이었고, 음악적인 완벽성을 추구하는데에는 당연히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곡 중 어떤  부분에  항상 합리적인 음악적 타협점을 찾아 내는 것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완벽한 음악성을 추구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한 성가의 기본 정신을 최대한 나타내고 구현하는데 더욱 높은  우선 순위를  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목표는 대원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즉 ,서로 인간적인 신뢰와 믿음을 쌓는것이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성가는 목소리와  음악적 기술 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이다.    우리의 마음을 모아  한 마음으로 노래 할 때 ,비로소 성가의  기본  필수 요건 중 하나를 충족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 또 듣는 교우들에게 우리의 뜻을 제대로 전 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에 말씀 드린 두 가지 목표를 향해서 지난 3년 8개월을  함께 지내 왔습니다.
약 3년 반이  지나자, 연습 중이거나 예배 중 찬양을 부를 때,  가끔이기는 하지만,  전에 실감하지 못하던  감동을  느끼는  저자신을 발견하고   놀라는 적이 있었음을  감히  여러분 께  고백합니다.
듣는 사람에 앞서  저 자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만족스럽지는 못 하나, 우리는 그 만큼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가끔 연습에 지친 대원 여러분으로부터  "우리는 어디 까지 갈 겁니까?"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이 얘기는 ' 얼마만큼의 음악적인 성숙도와  완벽함을 목표로 하고있느냐 '는 것을 믈으시는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대원들이  제 각기 다른 개성과 음악적 배경을 가지신 사실을 감안하면, 성가대에서  음악적 완성도를 거론함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음악적인  완벽함은 최 우선적 목표가 될 수도 없으며 , 또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먼저 말씀 드렸듯이  '성가의 뜻을 최대로 구현함' 에 가장 높은 우선 순위를 둡니다.

그러나,실제적으로  성가의 정신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음악적 기술 수준을  갖추어야합니다.  굳이 선 후를 따진다면, 성가를 제대로 부르기 위해  부단히 연습하고 노력하다 보면, 기술적 향상은 부수적으로 얻어진다고 하는것이 바른 설명일 것입니다.

따라서 그 방법의 하나로 ,같은 곡을 시간 차를 두고 되풀이 하면서, 가사나 흐름에 더욱 익숙 해지고, 자신있게 소리를 내며, 다음 단계인 '프레이징' 을 거쳐서  성가의 깊은 정신에  한걸음,한걸음   더 가까이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  같은 곡을 두 번째 해 본 후, 일 년 지나  세 번 째 다시 부를 때는, 저는 큰 차이를 실감하며  이 점은 대원 여러분 께서도 같이 느끼시리라 믿습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성가를 부르는 저희도 먼저 감동하고  은혜받습니다.  축복은  바로 이런 것일  것입니다.

앞으로 어디까지  저와 여러분이 같이 가게 될지  오직 하나님 만이 아십니다.
저는 거기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하며,  그 때까지 다 함께 가시자는 당부를 드리고,
시편 133편 1절 말씀으로 마무리하려합니다.
'형제와 연합하여 동거 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요"

감사 합니다.

                                    Aug.12.2005.

당뇨병에 대한 기본적 소개

몇 분의 독자께서 지난 6개월 동안 이 졸문을 읽어 주신 후 말씀하시기를, 전문적인 것은 의사끼리 만나 얘기하고, 보다 기본적인 것을 더 쉽게 써 주십시오 하셨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해 드린다.
당뇨병이란 글자 그대로 소변에 당분이 섞여 배출 되는 것이다.  어원은 라틴어의 '내 보낸다'라는 뜻인 diabetes 와 '단맛, 꿀'이라는 의미인 mellitus가 합한 것이다.  (Diabetes Insipidus라는 비슷한 이름의 다른 병도 있으나 이 것은 뇌하수체가 문제되는 전혀 다른 병이다.)
사람은 살아 움직이기 위하여 에너지가 필요 하고, 이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공급하게 된다.  음식에는 열량의 요소가 되는 전분, 지방, 단백질이 들어 있다.  (미네랄, 비타민, 물 등도 없어서는 안 되지만 이들은 열량원이 되지 못 한다.) 기름과 전분은 우리 몸 안에서 거대한 화학 반응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탄소 6개가 모인 포도당으로 변화, 열량화를 기다리게 되며, 단백질은 포도당과 질소로 나뉘어 포도당은 열량원으로 쓰이고 질소는 요소로 만들어 져서 소변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이 기본 연료인 포도당을 낭비하거나 버림이 없이 필요한 만큼씩 혈 중에 꺼내어 쓰도록 조절하는 물질이 췌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인슐린이다.
인슐린은 소화 흡수된 포도당의 양이 많으면 그에 따라 많게, 적으면 적게 나와 항상 혈당양을 일정한 범위 안을 유지하게 하며, 정상인의 경우 하루 40 유닛쯤 나온다.  정상인의 혈당은 공복시 80-120mg%,  식 후  160mg% 까지 이르며, 이 이상이 되면 신장이 재 흡수하지 못하고 소변에 섞여 밖으로 나간다.
이 것이 오줌에 단 맛이 섞인 것, 즉 당뇨다.
따라서 당뇨병을 다스리는 원칙은  "혈당이 소변을 통해 나가지 않는 범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 이다.
인슐린의 공급이 모자라는 경우는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우선,  공장 췌장이 전혀 가동을 못하거나, 극히 일부만 움직여서 생산이 거의 없는 경우다.  이 때는 밖에서 모자라는 만큼을 넣어 주면 된다.  의학적으로 이 것을 타입 I 당뇨병이라고 부른다.  청소년기 이전에 발병한 경우가 대개 여기 속한다.
다음은 췌장의 생산 능력이 있기는 한데, 능력에 한계가 있어 일정 한도 이상을 공급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 때는 생산을 독려하고 부추기는 약을 먹게 된다.  나이 들어 생기는 당뇨병이
대개 여기 속한다.  이 것은 타입 II 라고 분류한다.
다른 한 편으로 체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한도 이내의 포도당을 만들어 주면, 즉 갑자기 처리 능력 이상의 포도당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이 또한 혈당을 높이지 않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음식을 일정한 만큼 소량을, 나누어 정한 시간에 먹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것이 '당뇨 식이요법' 이다.
그 외에도 간에 저장되었던 당이 혈 중에 나오는 것을 줄이는 약, 인슐린의 효율을 높이는 약물도 있다.
위와 같이 이론적으로는 인슐린의 수요 공급과 기타 조건을 완벽하게 인위적으로 조절함으로써 당뇨병은 완전 정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완벽한 수요 공급의 조절은 아직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난 20년의 발전 양상을 보면 머지않아 많이 쉬워지고 좋아질 것 같다.  희망을 가져 보자.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고혈압에 대한 기본적 이해

군의관 시절, 고교 때 잠깐 선수로 공을 찬 경력이 있어 체육 대회 때마다 심판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한국에서는 축구 못해 본 남자가 없는 지라, 누구든지 동네 축구로 부터 시작하는 풍부한 실전 경험과 규칙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이 규칙들이 경험으로 배운 것이 대부분이라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따라서 장군부터 이등병에 이르기 까지 자기 생각과 다른 판정이 나오면 경기장에 뛰어 들어 항의하는 것은 보통이고, 집단 시위, 집단 폭행, 패싸움의 위험 수위 까지 가는 경우가 비일 비재 했다. 따라서 결승전 같은 중요한 시합이면 내 나름데로 비장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고혈압도 이와 마찬가지로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병이라 누구든지 어느만큼의 지식은 가지고 있는데, 그 것이 정확치 못한 경우가 많아 많은 오해와 시행착오를 일으킨다.
통계에 의하면 50세 이상 미국인의 1/3 은 고혈압 환자로 치료를 요한다고 되어 있다.  필자의 사무실에도 매일 뵙는다.  그런데 이 분들 중 극히 적은 일부만이 '혈압이란 무엇인가' 물을 때 정확하거나 비슷한 대답을 하며, 대부분은 그저 ' 높으면 나쁜 것 ' '낮추는 것이 좋다니 그저 따를 뿐' 같은 시원찮은 대답을 하신다.
사람은 항상 피가 돌고,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다.
피는 심장이 수축함으로써 뿜어 나오게 되며, 동맥을 통하여 온 몸 구석 구석을 돌아, 통하여 다시 심장으로 돌아 온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자는 중, 느끼지 못하는 중에도 항상 이 일은 되풀이 되고 있으므로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해서, 심장의 네 개의 방 중에서 온 몸으로 피를 뿜어 내는 곳은 좌심실이다. 피가 뿜어져 나와 대동맥을 거쳐서 중간 크기에 동맥에 이르렀을 때 그 동맥의 안 쪽 벽이 받는 압력이 '혈압'이다.  그런데 심장이 수축해서 밀어 낼 때의 압력과, 다음 수축을 위해 이완할 때 혈관 벽이 받는 압격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따라서 혈압은 수축시의 혈압과 이완 시의 혈압, 두 숫자로 항상 표시한다.
우리가 물을 말랑 말랑한 고무관을 통해서 멀리 보낼 때는 딱딱한 좁은 관을 통해서 굽이 굽이 멀리 보낼 때 보다 훨씬 힘이 덜 든다. 마찬가지로 혈관이 굳어 있거나 좁아져 있으면 똑같은 거리에 도달하기 위하여 훨씬 강한 힘이 필요하다.  즉, 심장이 그만큼 더 강력한 힘으로 수축하여 피를 뿜어 내야 하는 것이다. 또 혈관 내용물의 부피가 늘든지, 혈관 자체가 굳어 있으면 혈관 벽이 받는 압력은 당연히 커진다.
이 것이 보통의 경우 혈압이 높아지는 이유다.
정의 하기를,  수축기 혈압 150mm Hg/ 이완기 혈압 90mm Hg 이상을 치료를 요하는 높은 혈압, 고혈압이라고 부른다.
덧부칠 중요한 몇 가지가 있다.
사람의 혈압은 시시각각 똑같지는 않으나 일정한 범위 안을 유지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또 혈압을 잴 때는 쉬고 있는 상태, 편안한 상태에서 재는 것이 원칙이다.  이 것이 치료 여부에 기준이 되는 '기본 혈압'이다.
길을 가다가 잰다든지, 수퍼마켓에서 한 바퀴 돌고 나서 1불 짜리 자동 기계에서 잰다든지, 한참 일하다가 재는 것은 '기본 혈압이 아니다. 한 예로 십대의 청소년들이 100미터를 전력 질주하고 잰 혈압은 수축기 혈압이 220에 이른다.  어떤 의사도 이 것을 고혈압이라고 애기 하지 않는다.  이것은 안정하면 반 시간 내에 '기본 혈압까지 내려가기 때문이다.
자기 나이에 90을 보탠것이 정상이라는 근거 엾는 억지도 있는데,  나이가 들면 혈압이 올라 가는 경향이 있음은 인정하나, 고혈압은 숫자로만 판정한다.
그리고 잴 때, 항상 심장과 같은 높이에서 재야 한다.  머리 끝 혈압이 발 끝 혈압 보다 낮다. 이 것은 지구 중력 때문이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Wednesday, February 9, 2011

' 건설적' 인 '동상 이몽'

얼마전 "들판의 백합"이라는 영화를 봤다.  바하마 출신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에 주연의 1963년 흑백 영화다.

줄거리인즉, 떠돌이 노동자 ,요즈음 말로 '핸디 맨'  호머 스미스가 아리조나의 한  농촌 마을을  지나다가, 황폐한 농장에서 수녀 다섯이 힘겹게 일 하는 것을 보고,숙소 지붕을 고쳐준다.
그런데,자동차에서 새우 잠을 자고난 이튿  날  아침에도 임금을 주는 기척이 없다.  기다리다  못해 묻는 그에게 수녀 대표 격인 마리아는 유식하게  마태 복음 6장  성경 구절로 대답한다.  "들에 피는 백합은 하나님의 보상이 없지만 계속 핀다".  즉, "당신은 하나님의 일을 했으니  '무료 봉사'가 당연하다"는 논리다.    그리고 덧 붙여, 농장 한 구석 땅에 성당 건물을 지어줄 것을 부탁한다.
기가 막한 스미스는 잠시 멍 해진다.

그런데,어릴 적 부터 건축가가 꿈 이었고, 막 노동을 하면서도  그 꿈을 고이 간직해 온 그는 남의 간섭 없이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그 성당 건물을 짓는다는 조건으로 승낙을 한다.   면허나 정식 교육의 배경이 없는  그 에게, 이것은 자기의 " 평생의 꿈"을  실현 할 신이 내리신 "절호의 기회"로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여기에 장소가 없어  매 주 길에서 미사를 집전하는게으른 신부가 등장하고, 성당 건물은 짓고 싶으나 나설  용기가 없던 식당 주인  후안을 비롯한 순박한 주민 들이 돕겠다고 나선다.
스미스는 거절한다.   왜 ?  혼자 집 짓는 자기 "꿈" 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마을의 건축 회사에서 파트 타임  중장비 기사로 돈을 벌어 , 벽돌과 시멘트  ,식료품을 사서  건물을  짓고, 요즈음의 '1000 칼로리 다이엇'  보다 훨씬 못 한 자신과 수녀 들의 식탁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도록 한다.      이러다 보니, 성당 건축 공사는 "갓난 거북이 걸음" 정도의  잔전을 보이고,  스미스는  지쳐간다.    그러던 중 , 보다 못한 주민 들이 반 강제적으로 돕고,속 사정을 알게 된 건축 회사 사장이  자재를 무상으로 지원하여, 스미스는 못 이기는 척  고집을 접고 ,드디어  성당 건물은  완공된다.

건축의  마지막 과정으로  십자가를  지붕 위에 세울 때, 스미스는 십자가  바로  밑 시멘트 바닥에 자기 이름을 새김으로서, 꿈을 이룬 표적을 남긴다.

준공 전 날,그 동안 콧 배기도  안 보이던 신부가  손님들을 모시고 와서 자기가 지은 것 처럼 생색을 내고, 수녀 마리아는 인사 한 마디 없이 "오직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그녀의  "강성 믿음"을  다시한번  과시한다.     그 뿐 인가?  스미스에게 학교와 병원의 추가 건축을 요청한다.
이 법석을 조용히 지켜보던  스미스는 말 없이 길을 떠난다.
 
여기서 영화는 끝난다.

평생의 꿈을 생각지도 못 한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이루게 된 스미스,남의 생각이나 당한 처지야 어떻든 간에 자기의 신념 만 고집하고  남에게 받아들이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수녀 마리아,  손 놓고 있다가 차려진 밥상에  당연하다는 듯이 수저를 놓고  주인 노릇 하려는 신부,   성당 건축이라는 대의를 위해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고 헌신하는 후안과 순수한  마을 사람들, 스미스의  사람 됨과 기술에 반해 큰 후원자가  되었다가 수녀 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떠난 회사 사장 등이  확실한 대비와 대조를 보이며 얽힌다.

결론적으로,   성당 건물은 남고   나머지 일들은 진행형인 데서 영화는  잠정적인 "해피 엔딩"으로끝을 맺는다.


원작은 에드먼드 바렛의 소설이다,  바렛은 요즈음에도  사방에 널린 '자기만 옳은' ,'몰 염치한',  성직자들과,' 말 만 앞서는', 그러나  '과실을 챙기는데는 항상 유능한' 세속형 종교인들을  철저히  꼬집고있다.  
작가의  감정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


영화는 끝 났다. 그러나 ' 잠정적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뒷 맛은  오래오래   두고 두고 남았다.
사람 만 바뀌고,역사는 항상 되풀이 된다고 했던가?

오랫 만에  드문 감동을 준  감독  랄프 넬슨과  인상 깊은 연기로 인간 군상의 실체를 극명하게  나타내 준 명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에게  감사 드린다.


                                  Jan.14.2011.

고혈압 치료에 대한 오해 몇 가지

"고혈압은 낫습니까?" 하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대답은 "나을 수도았고, 안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혈압이 다른 병에 의하여 생겼을 때, 예를 들어 갑상선 기능 항진 같은 내분비 질환이나, 신장 질환, 심장 구조 이상, 특별한 종양 등등에 의해 부수적으로 왔을 때는 원인 질환을 치료함으로써 고혈압은 '낫는다.'
그러나 90% 이상의 고혈압은 원인을 확실히 모르는, 근치 불가능한 '본태성 고혈압'으로 동맥 경화를 동반한다.  이 때는 식아요법과 약물로 혈압을 내려 정상 범위를 유지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나앗다'는 것보다 '정상으로 유지된다'는 것이 타당한 표현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혈압이 정상 범위를 유지하면 환자와 정상인의 차이는, 약을 먹고 안 먹는 차이 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치료하여 혈압이 내렸는데 계속 약을 먹어야 하나요?" 하는 물음에도 같은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다.  근본적인 원인은 그데로 남아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약을 먹지 않으면 당연히 또 오르게 된다.
많은 분들이 저염식은 소금만 제한하는 것으로 알고 계신다. 그러나 저염식은 소디움(나트륨)을 제한하는 것이다. 소디움이 들어 있는 물질 중 우리가 항상 접하는 것은 물론 소금이다.  거기에다가, 생활 수준이 향상된 요즈음,  이에 못지 않게 날마다 마시는 소다 (콜라, 세븐업, 토닉워터 등등) 나 조미료 (미원, 아지노 모도 등등) 들도 소디움을 포함한 제품들이다. 당연히 이들도 제한해야 한다.
음식을 싱겁게 먹으면, 암만 많이 먹어도 괜찮다는 것도 잘 못 알려진 것이다.  싱거운 국물도 많이 들이키면 몸 안에 들어가는 소금의 양은 굉장히 많아진다.
"혈압이 높아지는 기분"이 들어 약을 더 먹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거의 모두가 위험한 정도까지 높아져도 아무 느낌이 없다.  이 때는 주치의와 먼저 의논하시기 바란다.  또 그리고, 혈압이 낮아지면 뇌에 제데로 피가 전달되지 못해 어지럽다.  즉, 수압이 낮아 고층 아파트에 수돗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루 한 번 먹는 혈압약에 경우, 아침에 먹기를 권하는 이유가 있다.  약을 먹고 난 후, 위장에서 소화, 흡수되어 혈 중에 녹아 들어 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보통 약 먹은 후 4시간에서 12시간 사이에 약에 혈중 농도는 최고치를 유지하게 된다. 
사람의 혈압은 깨어 있을 때가 잠 잘 때보다 10-20mm Hg 가량 높다.  이 높은 시간대와 약의 혈 중 최고치를 맞추어 주기 위해서 한 번 먹는 혈압 약은 아침에 먹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혈압을 날마다 재는 것은 계속해서 정상 범위를 유지하는지 여부를 비교 추적하는 것이다.  서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우선 같은 조건하에 잰 것이어야 한다.  즉, 아침에 막 일어나서 활동하기 전이라거나, 세 번쯤 오 분여의 시간 차이를 두고 재어 평균치를 낸다거나 하는 방법들이 있다.  혈압은 항상 같은 수치 일 수가 없다.  왜? 사람은 항상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에서 -

Tuesday, February 8, 2011

교회음악에서의 세대 차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일을 잠시 쉬는 동안 다른 교회 교우 들도 만나고 , 예배에도 참석하다가 지난 수 년 동안 너무 많은변화가 있었음을 실감하였다.  지난 60년을 기독교인으로 지내며 전통 교회 음악에 익숙해  온 나는 과거 이십여 년 동안 새로운 변화를 느끼고는 있었으나, 요즘 전에 자주 접했던 고전 성가,예를 들어 오라토리오, 칸타타,미사곡 들은 거의 들을 수가 없고,   또  20년 이상 경력의 성가 대원이나 지휘자들 중에도 그런  성가들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전혀 불러본 적이 없는 분 들이 태반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40대 이하의 교인들은 정도가 더 심해서  오직 '가스팰 송' 만 듣고 , 부르고,알고, 고전 성가는 전혀 접해본 적도없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새삼 크게 걱정이 된다.

지금 대부분 교회 대 예배에서 불리워 지는 성가는 비교적  음악적 구조가 간단한  대중 찬송가를 편곡 한 곡 이나 복음 성가이고, 성가곡으로서의 필수적 요소인 경건성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곡들이 많다.
특히 젊은 이들은 대다수가 영어예배에서 '가스팰 송'만 부르고  바하의 칸타타,헨델의 메시아, 비발디의 그로리아. 모찰트와 베토벤의  미사곡등등은 박물관이나 옛 문헌에 나오는  먼  음악으로  치부하고있다.

지금 부르는 '가스팰 송'이,  앞으로  역사에서 고전성가를 잇는 정통 흐름으로 자리매김 할 것인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대중 찬송가에 수록되어았는 적지않은 숫자의  곡들이 1920년,30년대를  휩쓴  '가스팰 송' 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될 수 도 있겠다.

 하지만,  '가스펠 송'만 부르더라도 역사적으로 수 백 년이상 생명력을 가지고 불리어 내려 온 고전 성가들을 이해하고, 섭렵하고 , 공부 한 다음, 선택에 의해,새로운 성가를 부르는 것이  바른 순서라고 할 것이다.     새로운 성가는 ,힘 들겠지만, 이 과정을 거치고 나야  더욱 감동을 주고  깊이있는 교회음악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에게는 같이사는 딸이 있다.  이 년 전 다시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을 때,엄마와 함께 교회 성가대에 서는것을 권 했더니,마지못해  승낙하고 매주 노래하게 됐다.
얘는  미국에서 나서 고등학교 시절 까지 교회 청 소년 부에서 "가스팰 송' 만 부르던 아이다.
한국어는 떠듬 떠듬 수준이지만  한 글은  읽는다.  그런데  성가대에  참여 한 후,노래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고, 오히려 고전 성가들을 점점 더 즐기게 되어  요새는 아무때나 고전 성가를  흥얼 거리기도하고, 앨토인  엄마와 함께 피아노 앞에서 연습하는 때도 많다.
이는 내가 생각지도 못 했던 축복으로 , 감사하고있다.

마찬가지로,많은 젊은 이 들이  고전음악,고전성가를 부르고, 연습하고 ,익히는 중, 당연히 힘은 들겠지만 ,그 내용과 음악성의 깊이에 감동하고  더욱 즐기게 되리라 믿으며 희망을 가진다.

교회외 젊은이들에게  고전성가에 접하고  익숙해지는 기회를 주는 것은, 우리들,  보다  나이든세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교회음악에서의 세대 간 거리를 헤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거창하게 멀리 갈 필요는 없다.
여러분의  고견을 기다린다.

                                              JAN.19.2011.
뉴욕   한국일보에  쓴  글입니다.

Monday, February 7, 2011

폭설의 추억

호강스러운 소리겠지만 , 이번 겨울은 예년과 달라 눈 때문에 거의 매주 하루씩은 "합법적"으로 쉬고 보니, 일 하는 곳에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고 때로는 지겹기도 하다.
사십 년 전  한국에 살 때는 눈이 많이 와서 학교나 일을 쉬어 본 적이 없으니 더욱 그러하다.            1970년 군 시절 ,눈 덮인  강원도 산 골짜기 텐트 안 에서  읽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맨 첫 대목 ,눈이 무지무지 쌓인 혹가이도의 풍경이 이럴까  가끔  생각한다.                                                                                                                                                                    
국민 학교  3학년  때라고  기억된다.          겨울 방학 과제물의 하나로 눈 쌓인 동네를 그린 풍경화를 그려갔다.  그런데  이 그림이 과제물 전시회에서 제일 큰 상인' 특선 ' 후보가 되어 심사를 받게 되었다.   우연찮게  그 심사장을 지나다가 열 띄게  갑론  을박하는 것을 듣게 된다.    물론 심사위원 들은 미술이 전공이 아닌 3학년 담임 선생님들  이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다른 친구의 그림이 내 그림을 밀어내고 특선에 뽑히는것이었다.         이유인 즉,"이 그림이  색 칠이  더 되어있다"는 설명이었다.          그  어린 마음에,"아니,눈 그림자는 회색, 노랑색으로 처리했고,눈 쌓인  부분을 도화지의 흰색 여백  그대로 둔 것이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억울한 김에 우리 반  담임 선생님 께 볼 멘 소리로 말씀 드리니,그냥  미소로만  답 하신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별로 큰 상도아니니,  그냥 대강 정하고  지나갔으리라고  지금은 이해를 한다.   하지만 그때는 어찌나   '화딱지'가 나던지 지금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얼마전 친지 한 분이  오 탁번  시인의 "폭설" 이라는 시를 보라고 하셔서 인터넷에서  찾아 읽었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은 " 아! 이런 시도 있구나!"  하는것이었다.
 적당한 외설도 욕설도 전혀 거부감이 없고 ,밉지도 않고,  오히려"아하!'하는 탄성과 함께 마음을 움직여 나를 미소짓게 했다.       이장께서 막걸리 잔 깨나 드시는  텁텁하고  걸걸한  목 소리로 고함치는 찐한 남도 사투리가 내내 들려 오는것 같았다.

 다음 주 일기예보를 보니,또 "폭설"이 온다.       이번에 눈에  갇히면  바그너의 "뉴른베르그의   명 가수" 서곡을  우리집 아랫 층 벽이 쾅쾅 울리도록 ,볼륨을 높여 들어보려 한다.


                       폭설
                               오탁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 끝  외진 동네에
어느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조 ㅅ  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  밤에   자 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  나부렀소 잉!    어제 온 눈은 조 ㅅ 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 잉"

왼 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 들은        회관에 모여 소주를  마셨다.
그 날 밤   집집마다      모과 빛  장지문에는         뒷 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 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 눈으로   뒤 덮여있었다.
하느님이 행성 만한  떡 시루를 뒤엎는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조 ㅈ 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 목에 놓인 뒷물 대야를 내 동댕이 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주민 여러분!      워따 , 귀신 곡 하겟당께!          인자 우리동네  몽땅  조 ㅅ 돼 버렸소잉!"

                                                                                        Feb.7.  2011.

"결핵 반응"에 대한 이해.

항상 초여름이면 내과의사, 소아과 의사에게 결핵 반응 겁사 ('튜버클린' 테스트, '만토' 테스트) 에 대한 문의가 많이 온다. 여름 캠프와  9월 개학을 앞두고 모든 학교가 결핵 반응 검사 결과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왜 해마다 해야 됩니까?" 부터 시작해서, 한국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는데 무조건 9개월 동안 약을 먹으라니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는 전화도 있다. 

나이드신 독자 여러분께서는 초등학교 시절, 예고 없이 하루 아침 도망 가지 못하게 선생님께서 지키는 가운데 팔뚝에 조그만 주사침을 맞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삼일 후에 부어 올랐으면 양성, 아무변화가 없으면 음성으로 판정 받고, 음성이면 어깨에 한 방 더 맞아야 했다. 이것을 BCG라 했다.  그래서 양성은 좋은 것,  음성은 한 방 더 맞았으니 나쁜 것으로 간단히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적어도 여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공식 통계는 없으나 해방 직 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40세 전 후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은 영아 사망률과 전염병, 특히 결핵이 짧은 수명의 주 원인이었을 것으로 생각 된다.
1970년 대만 하더라도 20세 까지 결핵 반응 검사는 거의 95%가 양성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한국인 평균 수명이 70세 이상 되며, 주 된 사망 원인도 성인 병이나 암으로 많이 바뀌었으나 결핵은 아직도 상당 부분을 점하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 가서,  결핵 반응이란 한 마디로 자신이 결핵균과 싸운 적이 있나 없나를 나타내는 검사다.  전에 결핵균과 싸워 본  역사가 있으면 몸안에 항체가 생겨 있으며 이것이 검사에 반응하여 양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항체가 언제 생겼는지 모른다. 따라서 '언제'인지를 알기 위해 미 보건성은 매년 검사하기를 권한다.  작년의 음성이 금년의 양성으로 변했다면 지난 일년 동안에 결핵균과 싸운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며, 아마 지금도 싸움이 계속 되거나, 싸움에 져서 감염 상태일 수도 있다.  (그래서 특히 집단 생활을 하는 학교, 군대, 교도소 같은 곳에서는 해마다 엄격히 결핵반응 결과를 보고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음성이 양성으로 변하는 경우에는 가슴 X-레이를 찍어 확인 하게 되며 가슴 X-레이 소견이 정상이라고 하더라도 9개월 내지 일년 동안 항 결핵제를 먹도록 하고 있다.  일단 결핵과 싸워 이겨 '상황' 끝인 수도 있겠으나, 끝났다고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모두 약을 먹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처음 부터 양성 반응을 보이는 나이 드신 분, 특히 동남아 같은 결핵 오염 지구에서 오래 살다 오신 분들도 항 결핵제를 꼭 복용해야 되는가?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즉 X-레이 상 최근에 감염된 소견이 없거나, 증상이 없으면 의사들은 대개 약 복용을 보류하고 두고 보자고 애기한다.
또 한 가지, 어려서 어깨에 BCG를 접종한 사람도 결핵 반응은 양성을 나탄낸다.  이 BCG (Bacille Calmette Guerin]  백신은 결핵균과 같은 가족 (마이코 박테리아]에 속하는 비슷한 다른 균을 약화 시켜 만든 것이다.  이 것을 사람에게 접종하여 결핵 균에 대한 면역성을 기른다는 것인데, 이 백신의 효과에 대해서는 찬, 반 의논이 분분하다.  그래서 주로 결핵 오염 지역에서 안 하는 것 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으로 집단 접종 한다.
이 BCG 접종 후 양성 반응이 된 분은 접종 때문 이라고 생각 될 수도 있고,  정말 감염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 때는 의사가 다른 소견들과 증상을 참작하여 치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겁부터 내시는 분이 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얼마든지 치료,
예방이 가능하니 주치의와 상의 하시면 된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 에서-

Sunday, February 6, 2011

최 진 훈 약력 소개

1945  최 상옥 교장 , 위현옥 여사의 장남으로 출생,  서울 고(16회),   서울대 의예과,  서울대 의대 졸업(1970).육군 군의관 복무 후 도미(1973), 뉴욕 브루클린 소재 뉴욕 주립의대 부속 메소디스트 병원에서내과 전문의 과정 수료,    내과 전문의.   뉴욕 메디칼 칼리지(뉴욕 의대)  내과 임상  교수 (clinical faculty)   역임.  개업 의.

유치원 시절  피아노,  의예과  시절 프렌치 혼을 시작하여,  서울 의대 메디칼 오케스트라,  서울대  팝스 오케스트라에서 프렌치 혼 주자로 9년 (군 복무 시절 포함) 동안 일 하였고,  도미 후 뉴욕 쥴리아드 스쿨에서 빈센트 라 셀바 교수 밑에서 오케스트라 지휘  4년 수학.
1987년 이래로 뉴욕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 및  상임 지휘자로  활동  하고 있음.

1974년 부터 뉴욕 메소디스트 병원 교회, 브롱스 한인교회 ,웨체스터 연합교회에서  올갠 주자로  일 하였고,  웨체스터  연합교회   , 아스토리아 감리교회,  뉴 저지   그레이스 감리교회,   웨체스터 중앙교회,   롱 아일랜드 뉴 드림 감리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일 하였음.

가슴 아파

며칠 전 신문을 읽다가,한 칼럼에서 충격적인 사실을접했다. 내용인 즉, 네 사람의 중년 남성들이 골프를 치다가 그 중 한 분이 가슴이 답답하다고 주저앉았다. 그러자 나머지 세사람은 천천히 쉬다 오라며 먼저 떠났고, 고통이 더욱심해진 당사자는 카트를 타고 지나가는 여자 분에게 클럽 하우스까지 태워주기를 부탁했으나 이분도 자기 팀을 따라 갈 길이 바쁟다며 거절, 통증은 더욱 심해지는데 속수무책 앉아 있다가 운줗게 지나가는 골프장 안전원 (시큐리티 가드)을 만나 앰블란스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직행,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수술 받고 그리고 더 큰 병원으로 옮겨져서또 다른 큰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첫 단계만 제외하고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 '급성 심근경색'으로부터 살아 남은 드문 예 중의 하나다.
의사의 입장에서 전말을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슴이 답답할 때 이미 심근경색이 돴고, 주저앉았을 때는 통증과 함께 부정맥이 와서 어지럽고, 숨이 가빠졌으며 응급실에 가 입원 후 처음 받은 수술은 '안지오플라스티'라는 막힌 혈관에다 관을 넣어 뚫는 것이었으며 더 큰 병원에서는 "바이패스' 라는 관상동맥 혈관 이식을 했던 것 같다.
그 칼람을 쓰신 분은 성경의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이 사건의 원인을 각박한 인심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에다 '무지'와 '무식'을 더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의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갖는 '심근 경색'이란 무었인가?
사람의 심장은 하루 24시간 쉴 새 없이 피를 온 몸에서 거두어 들인 다음, 폐에서 걸러 산소를  보태고 펌프질해서 온 몸에 다시 보내는 일을 계속한다.
우리 심장의 근육은 쉬지 않고 일하는 튼튼한 특별한 근육이며 그 자체도 근육이기 때문에 항상피를 통하여 산소를 공급 받아야만 살아 움직일 수 있다. 이 심근이 피를 공급 받는 파이프가 바로 '관상동맥'이라는 핏줄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심근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면, 예를 들어 숨을 쉬지 못한다거나  공기중 산소의 함량이 현저하게 부족하다거나, 폐에 문제가 생겨 산소를 흡수하지 못 한다거나, 또는 폐에서 새 산소를 받은 피를 심장까지 운반을 못한다거나, 관상동맥이 막혔다거나 하는 경우 심근이 제데로 움직일 수 없으며, 따라서 심장이 규칙적이고 힘찬 박동을 못하게 된다.
그리고 위의 여러 이유중, 관상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혀서 심근이 요구하는 만큼의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며, 이 때 가슴에 통증이 온다. 그러나 꼭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고 가슴 복판이 거북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목으로 무엇이 치미는 것 같기도 하며, 팔이 저리기도 하고 토할 것 같기도 하다.
이 때 바로 움직이기룰 그치고 안정하면 심장 박동수가 줄어들고 , 따라서 심근이 요구하는 산소의 양이 적어져서 그 좁아진 혈관으로 받는 산소의 양으로 '현상 유지'가 가능해져 일시적으로 위의 증상들이 없어지는 수도 있다. 이 것을 '협심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관상동맥이 거의 막혀 필요한 산소의 최소량도 공급하지 못하면 위의 증상들은 계속되고, 그동안 산소 공급을 기다리다 못한 심장 근육 세포는 기능을 정지하고 죽는다. 이 것이 심근 경색이다.
이 심근의 죽은 부분이 움직임을 멈추면 심장은 피를 제데로 뿜어낼 수 없으며, 뿐만 아니라 이 때는 부정맥,  즉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현상도 동반하게 된다. 따라서 뇌의 산소 공급이 줄어든다. 이 것이 밖에서 보아 환자가 어지럽다고 하다가 쓰러져 정신을 잃는 때인 것이다.
물론 가슴에 통증이 오는 경우는 협심증이나 심근 경색만이 아니다. 위장의 문제일 수도, 혈관계,폐의 문제일 수도 있디. 또 심각하지 않은 그냥 지나가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순간 앞을 모르는 우리는 '유비무환', 즉 그 당시로서 가능한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여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상식이고 더군다나 그 문제가 생사여부와 관련된 것이라면 당연히 더욱 진지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일을 중지하고, 우선 가슴 아픈 사람을 가장 가까운 응급실에 빨리 옮겨 치료 받게 함이 순서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우리 동포들은 가슴 아프고 답답한 증상이 얼마나 심각하고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
아마 처음 말씀드렸던 골프장의 여러분도, 시큐리티 가드만 빼고 모두 이 범주에 속했던 것 같다.
다행히 우리가 사는 뉴욕에서는 '911' 전화 한 통화면 몇분 안에 앰블런스가 들이 닥치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주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분들은 돈드는 것을 걱정한다. 그러나 이 곳은 나중에 자기 능력껏 얼마씩 나누어 갚는 제도가 일상화된 나라이다. 한국에서처럼 입, 퇴원이  안 되거나, 집달리가 차압하는 경우란 없다. 지불 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면 국가가 부담한다.
이제부터는 가슴 아픈 분들을 만나면 보다 심각하게 여기고 급히 '911'을 돌리는데 인색하지 마시기 바란다.

                    칼럼집 "벽을 향한 소리" 에서-